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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레 드 발자크는 1800년대의 인간들이 자신이 처한 삶을 연기하는, 우스꽝스럽고 애처로운 풍경을 '인간 희극'이라는 세계관으로 구현했다. 2000년대의 소설가 정지돈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이지만 어딘가 뒤틀리거나 결여되어 있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소설집 <인생 연구>를 보며 나는 어쩐지 발자크가 시도한 풍속 연구를 떠올렸다. 소설집을 여는 첫 소설 <우리의 스크린은 서로를 바라본다>에서 주인공인 '나'는 한때 나와 같은 집에 살았던 '안젤라'와 걸으면서 그녀와 함께할 수도 있었던, 라라랜드적인 순간을 상상한다. '내셔널지오그래피의 한 장면처럼 보편적인 일생(21쪽)은 울고 말하고 똥싸고... 등등의 풍경을 거쳐 죽음에 이른다. 그리고 '우리는 곧 목적지에 도착했다.'(같은 쪽)는 문장이 '죽음'의 이미지에 겹쳐진다. 우리는 필멸할 것이다. '모든 사람의 삶은 닮아있는 것 같다고'(29쪽) 말하는 안젤라의 말이 귀에 잘 녹아드는 것은, 결국 우리 다수의 삶이 제 방식으로 뒤틀렸다는 점에서 뻔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소설집에 실린 마지막 소설 <끝없이 두갈래로 갈라지는 복도가 있는 회사>는 ChatGPT와의 '협업'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지돈은 자신의 소설이 '비인간적'이라는 맥락으로 읽히며 동료들 사이에서 인구(인간 구글)이라고 놀림받았던 2016년의 경험을 끌어와 2023년의 감각으로 ChatGPT에게 질문하며 소설을 창작했다. '정보와 지식의 영역에서, 재조합, 배치, 조립의 방식'으로 소설을 써온 인간 소설가와 '끝없이 두갈래로 갈라지는 복도가 있는 회사'라는 설정의 문장을 반복해 학습하며 조금 다른 버전의 문장을 뱉어내는 인공지능은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미노타우로스의 미궁과 지금 우리가 선 자리는 얼마나 다른가. 내가 맞닥뜨린 이 버전의 인생을 연기하며, 나 역시 이 소설과 함께 내 인생을 연구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