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내 평생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까
엄마를 이해하고 싶음과 이해하고 싶지 않음. 그 사이에서 묻고 듣고 쓰는 일은 혼란의 연속이다. “엄마는 도대체 왜 그럴까.” 비난 같기도 하고, 간절한 기도 같기도 한 오래된 물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딸들은 모녀 구술생애사라는 험난한 여정을 시작한다.
이 책은 2024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이어진 모녀 구술생애사 워크숍의 결과물을 담은 것이다. 구술생애사란 평범한 사람의 일대기를 기록하는 것으로, 모녀 구술생애사는 딸이 엄마의 생애를 인터뷰하는 작업이다. 이 모임에 참여한 여자들은 각자 인터뷰를 진행하고 격주로 만나 감상을 나누었다.
딸들은 엄마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화가 나고, 답답하고, 묵혀뒀던 서운함이 되살아나 괴롭다고 했다. 그 이유를 가만가만 듣다 보면 어린아이가 보였다. 돌봄과 인정과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는 어린아이. 그 곁에는 돌봄에 지친 여성이 앉아 있다. 밤이 깊어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 어린 자식들을 안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내 또래의 여자가 어디에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방 안에 홀로 시들어가고 있었다. 이 여성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살 길을 헤쳐 나갔다. 그 과정에서 딸에게 남은 생채기는, 엄마가 버텨낸 외로움, 괴로움의 역사와 얽히고설켜 있다.
모녀 구술생애사는 엄마와 딸이 각자의 목소리를 찾아나가는 모험이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감정에 솔직해진 두 여자의 말간 얼굴을 만날 수 있다. 남자 없는 돌봄의 세계에서 오직 여자들만이 분노, 슬픔, 우울, 그리고 사랑을 토해낸다. 책에서는 이 감정에 거리를 두고 응시하며, 그 근원을 탐색하고자 한다. 엄마를 향한 질문은 결국 나의 욕망을 통과해 가부장적인 사회의 모순으로 향한다.
자매품 『나의 엄마 인터뷰 실패기』는 워크숍에 함께 참여했으나 끝끝내 엄마의 구술 허락을 받지 못한 멤버 하민지가 아쉬움에 써내려간 에세이다. 엄마와 딸이 인터뷰를 놓고 옥신각신 하는 와중에도 서로를 향한 애와 증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환영합니다. 가부장제가 빚어낸 엄마와 딸의 고구마 로맨스, 모녀 구술생애사의 세계에 오신 것을.
― 편집자 김은화
누구에게도 인정받아본 경험이 없는 그녀들은 자기 목소리를 듣는 것도 낯설다. 오래된 수도꼭지를 틀면 녹물이 나오듯, 몇 십 년 된 묵은 이야기를 처음 할 때는 비명 같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8p)
어떤 딸은 알고 있다. 어머니는 지른 적도 없는 비명소리가, 실은 오래 전부터 새어나오고 있었다는 것을. 들려오기 때문에 외면할 수 없는 고통이 있다. 이는 깊은 곳에서 딸의 고통과도 맞닿아 있다. 가부장적인 가족 안에서 어머니가 감당해야 하는 몫은, 결국 딸에게로 흘러넘치게 되어 있다. 고통의 낙수효과랄까. (8p)
이 여성들은 언제나 생계부양자였다. 결혼 전에는 서비스직, 공장 노동자, 경리로 임금 노동을 했다. 결혼 후 전업 주부로 무임금 노동을 하다가, 아이들이 영유아시기를 벗어나자 틈틈이 돈을 벌었다. 아이를 돌보며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1순위는 자영업이다. 최숙희는 가겟집에 딸린 슈퍼를 했으며, 박경화는 집 근처에서 옷가게와 가구점 등을 운영했고, 우정아는 집 안의 방 한 칸에 피부 관리샵을 냈다. 자영업은 가게에서 손님을 맞이하며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다. (10-11p)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어머니의 생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 내 인생을 대하는 태도뿐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시작한 어머니가 자신을 끝내 사랑하게 되기를, 자신의 생을 언젠가 두 팔로 껴안게 되기를 바라본다. (15-16p)
자기 목소리를 되찾은 딸들이 언젠가 어머니의 집을 떠날 수 있기를 바란다. 다시 돌아왔을 때는 어머니도, 딸도 전과 같지 않으리라. 이상하게도 남의 엄마 이야기는 다 사랑스럽게만 들린다. (16p)
“어린 숙희 씨의 하루는 들로 소를 데리고 다니고, 밭을 매는 일로 꽉 차 있었다. 집에서 따로 글공부를 봐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열한 살이 되자 학교 수업을 따라 갈 수 없어, 학업을 그만뒀다. 한글을 다 깨우치지 못한 채 스무 살이 된 숙희 씨는 처음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들을 대학 보내느라 여력이 없었다. 둘째 딸의 배움은 하염없이 뒤로 밀려났다. 그 시절, 그것은 너무나 당연해서 질서 같았다.” (11p)
처음 학원을 다녀온 날, 엄마는 ‘가, 나, 다, 라’를 쓰면서 울었다. 자기를 안 가르친 할머니가 원망스럽고, 옆에서 글공부를 도와주지 않는 남편도, 딸도 미웠다. 엄마는 무섭도록 집중했다. 하루에 A4용지 네 장을 앞뒤로 거뜬히 쓸 만큼 눈에 보이는 모든 글자를 옮겨 적었다. (23p)
엄마를 처음으로 이해해준 사람은 딸이었지만, 그 딸은 하필 화가 나 있었다. 그럼에도 듣는 일을 멈출 수는 없었다. 아무리 회피하려고 해도, 어린 엄마를 한 번 만난 이상 다시 엄마 앞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24p)
내가 바라던 것은 하나였다. 엄마의 무감각에 균열이 일어나기를. 엄마 혼자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일, 한글을 몰라서 멍청하다고 믿는 일, 자신보다 타인이 우선순위가 되는 일. 관성처럼 그냥 넘겼던 일들, 너무 참아서 참는 줄도 모르는 말들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따져보고,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25p)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야지”라고 말하는 우정아는, 그러나 일밖에 모르는 무뚝뚝한 남편으로부터 원하는 만큼 관심을 얻지 못해 평생 목말라한다. 이 갈증을 채워주는 사람이 바로 장녀 홍아란이다. 엄마의 일상을 가만가만 들어주는 사려 깊은 청자로서 홍아란은, 그러나 엄마와 마찬가지로 누구보다 기민한 청자를 필요로 하는 딸이기도 하다. (13p)
결혼 2년차, 엄마를 만나고 오면 종일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괜히 말했나? 이렇게 말할 걸 그랬나? 왜 이렇게 말하지 못했지? 다음엔 이렇게 말해야지.’ 하는 후회하는 마음 반, 다짐하는 마음 반이었다. 나와 엄마는 그리 편한 관계가 아니다. 다소 엄격하게 키운 영향으로 나는 어릴 적부터 엄마, 아빠를 어려워했다. 항상 엄마 말에 순종했다. 커서는 뭐든 다 받아주고, 얘기도 들어주고, 챙겨주고 있었다. 일찍이 철든 나에게 엄마는 항상 언니 같다고 했다. (135p)
그것도 아빠가 십 원 한 장 안 보태줬어. 중고차도 그렇고 다 엄마가 일해서 번 돈으로 산 거야. 현금으로 천만 원 내고 나머지는 할부로 산 거야. 나는 성향이 쓸 건 쓰고 할 건 하는 그런 스타일이거든. 움켜쥐고 있으면 뭐 해. 그런다고 낭비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꼭 필요한 거는 사야 될 거 아니야. 남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 우리가 능력이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왜 그렇게 못하고 사느냐 이거야. (162p)
생활비는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이 동결. 월급을 많이 타도, 조금 타도 동결. 보너스도 안 주고 아무것도 안 주고. 엄마가 순진했던 것 같아. 그런 거에 대해서 막 파고들고 알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퇴직금도 하나도 없고 맨날 돈이 하나도 없대. 그렇게 말하면 내가 돈을 뺏을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항상 생활비가 똑같아. 나한테만 인색하게 왜 그러는지 몰라. (197p)
내가 열네 살 때 부모님은 이혼했다. 학교 갔다가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곰솥에 전복죽을 잔뜩 끓이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라는 내 인사에 엄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묵묵히 냄비만 저었다. 그렇게 한 솥 끓여놓고는 그대로 집을 나갔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그게 우리 가족의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난 남겨진 게 아니었다. 버려진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218p)
그렇게 맞으면서 왜 한 번도 신고하지 않았어요? 그때는 신고해서 되는 게 아니었어. 경찰들이 온다 해도 와서 “부부 싸움인데 무슨, 그냥 잘 해결하세요.” 이러고 가는 게 다야. 경찰들이 가정사에 개입한다 이런 거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야, 누가 죽거나 하기 전에는. (264p)
사실 나는 내가 뭔가 이루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한번은 단골손님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 “이 집은 올 때마다 가게가 두 개가 되어 있고, 넓어지고 대단하다.” 그때 처음으로 ‘그렇구나. 내가 이렇게 키운 거구나’ 하고 생각했어. 근데 내가 가게를 키우는 것보다는 너희한테 더 넉넉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319p)
인터뷰하는 동안 엄마는 지난했던 과거보다 나아지지 않은 현재를 마주하는 것을 더 고통스러워했다. 물을 가득 담은 풍선이 빵 터진 것처럼 엄마는 속에 있는 얘기를 와르르 쏟아내며 눈물 흘렸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고 괜찮냐는 말조차 건네지 못했다. (221p)
구술 최숙희
54년 전남 무안군에서 태어났다. 동네에서 작은 슈퍼를 운영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숯불갈비집에서 서빙을 하고, 전단지를 부착하고, 예식장 뷔페에서 음식을 만드는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다. 칠순이 넘은 지금도 평일에는 아들 집에 머물면서 손주를 돌보고, 주말에는 예식장에서 음식을 만들며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한다.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못 다 깨우친 한글을 배워 자식들에게 편지를 써주는 일이다.
기록 김소영
92년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쓰는 건 연결되는 일이라고 믿는 사람.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눈빛과 몸짓, 침묵 속에서도 연결될 수 있음을 배웠다.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 외로움 곁에 앉아 듣고 받아쓰는 일을 오랫동안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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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 우정아
65년 전북 진안에서 태어났다. 전주 유일의 백화점과 호텔에서 근무했으며 수원 공장에서도 일했다. 결혼 후 전업주부로 10년간 두 딸을 키웠다. 이후 타고난 손재주를 살려 집에서 마사지샵을 열어 피부 관리사로 일했다. 아모레퍼시픽에서 10년간 화장품 방문 판매를 했다. 지금은 재즈댄스, 등산, 요가, 필라테스 등 다양한 취미 활동을 하며 지내고 있다.
기록 홍아란
92년 수원에서 태어났다. 영화 마케터를 거쳐 현재는 플로리스트 겸 원예 강사로 일하고 있다. 30대가 되고 보니 가족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의 인생을 글로 남기고 싶어 모녀 구술생애사 작업에 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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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 박경화
65년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결혼 후, 두 딸을 돌보며 돈을 벌기 위해 장사를 시작했다. 부대찌개 가게, 신발 가게, 가구점, 미용실, 옷 가게 등 운영해본 업종만 12개가 넘는다. 이혼 후, 두 딸과 살기 위해 전 재산 770만 원으로 다시 옷 가게를 열었다. 오늘도 가게 셔터를 올리며, 365일 쉬지 않고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기록 박하람
92년 서울에서 태어나 강원도 바닷가 마을에서 자랐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글을 쓴다. 오로지 일에만 매달려 살아가던 중 엄마와의 다툼 끝에 처음 ‘딸’로서 펜을 들었다. 이 책에 실린 원고「돈보다 소중한 건 등 뒤에 있었다」는 ‘엄마는 도대체 왜 그럴까’ 하는 물음에서 시작해, 사랑스럽지만 미친 듯이 답답한 엄마와 닮아버린 나 자신에 대한 기록이다.
1) 21,200원 펀딩
- <니는 딸이니까 니한테만 말하지> 도서 1부
- <나의 엄마 인터뷰 실패기>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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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6,200원 펀딩
- <니는 딸이니까 니한테만 말하지> 도서 1부
- 후원자 명단 인쇄 엽서 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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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책자 『나의 엄마 인터뷰 실패기』
- 분류: 에세이
- 저자: 하민지
- 펴낸곳: 딸세포
- 서지정보: 40쪽 / 128*128mm
- 출간일: 2025년 6월 17일 (예정)
- 정가: 5,000원
※ 알라딘 북펀드 굿즈가 포함된 구성에 펀딩하셔야 받을 수 있습니다.
소책자 『나의 엄마 인터뷰 실패기』
- 분류: 에세이
- 저자: 하민지
- 펴낸곳: 딸세포
- 서지정보: 40쪽 / 128*128mm
- 출간일: 2025년 6월 17일 (예정)
- 정가: 5,000원
※ 알라딘 북펀드 굿즈가 포함된 구성에 펀딩하셔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