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문트 후설, 그는 현상학이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철학만이 아니라 다른 학문 분야에도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도록 기틀을 잡은 사람이었다. 1859년 현재 체코의 프로스테요프 지역에서 태어난 그는 학문적 여정을 수학에서 시작했다. 1882년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변수 계산 이론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당대 최고의 수학자였던 베를린의 바이어슈트라스 교수의 조교로 근무한 뒤, 1883년 빈 대학에서 프란츠 브렌타노의 심리학과 철학 강의를 들으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한다. 명민한 동료들과 함께 연구하면서 후설은 이성적이며 보편적인 철학에 대한 꿈을 키운다. 1887년 할레 대학에서 「수 개념에 관하여 — 심리학적 분석」이라는 논문으로 교수 자격을 취득한 뒤, 후설은 이전의 심리학적 분석의 한계를 깨닫고 1900년에 『논리 연구』를 출간한다. 이 작품은 후설의 이름을 알렸을 뿐만 아니라 그의 현상학은 물론 이후 현상학 운동의 실질적인 출발점이 되었다. 이후 후설은 괴팅겐 대학을 거쳐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퇴임할 때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 영역에 도전하는 자로서 현상학 연구에 정진한다. 제1차 세계 대전과 나치 치하의 우여곡절을 거쳐 1938년 프라이부르크 근교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의 인생은 말 그대로 인간의 의식을 해명하고, 철학의 위상을 새로이 정립하고자 했던 도전의 연속이었다
1900년 『논리 연구』가 출간될 때, 후설은 이미 자신의 현상학적 기획에 대한 얼개를 갖추기 시작했다. 당대 지배적인 경향이었던 ‘심리학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함으로써 보편학으로서의 철학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개별 학문들을 이론적으로 정초할 수 있는 제1철학이 가능하다고 믿었으며, 이를 ‘엄밀학으로서의 철학’이라는 과제로 표현한다. 그리고 이제껏 철학이 그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던 이유는 의식과 대상 사이의 상관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라고 진단한다. 의식은 항상 ‘무엇에 관한 의식’으로 존재한다. ‘지향성’이라는 개념으로 표현되는 의식의 존재 방식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채, 의식과 대상을 분리해서 이해하려고 했던 것이 전통 철학의 태도였다. 지향적 의식에 대한 체계적인 해명을 통해 후설은 개별 과학들에 대한 이론적 정초, 나아가 참된 이성에 기초한 윤리적으로 건전한 삶에 이르기까지,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해명하는 일이 철학의 궁극적인 역할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과제는 그의 작업을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추진하게 만든다. 정적 현상학으로 의식과 대상 사이의 지향적 상관관계를 논리적이고 구조적인 측면에서 해명하고, 발생적 현상학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대상의 발생적 가능 근거를 해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 두 방향의 과제는 후설의 문제의식과 사상이 발전해 가는 시기와도 관련이 있다.
『논리 연구』는 후설 초기의 작업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후설은 논리적 진리로 상징되는 이성적 진리들은 결코 경험적 사실에 의해 정초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후설은 철학을 가장 이성적인 학문으로 혁신할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이를 「엄밀한 학으로서의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다.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동료와 제자들과 함께 『로고스』라는 학술지에 발표한 이 글에서, 후설은 철학은 어떤 형태의 비합리주의와도 타협할 수 없다는 점을 밝힌다. ‘자연주의(심리학주의)’나 ‘역사주의’ 혹은 ‘세계관 철학’과 같이 당대를 이끌던 사조를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현상학적 방법을 통해 철학을 혁신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러한 입장들의 문제점은 의식의 본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잘못된 이념에 인도되어 결과적으로는 상대주의나 회의주의로 귀결된다는 것이었다. 의식의 존재 방식이 지향성이라는 것은 많은 의미를 갖고 있다. 데카르트 이래로 의식과 대상을 실체적으로 구분하는 이원론적 사고방식은 참된 지식의 문제를 하나의 수수께끼로 만들어 버렸다. 주관과 객관을 실체적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방법은 경험을 통해 파악되는 외부 세계에 대한 지식이 어떻게 보편타당성을 가질 수 있는지를 해명하는 데 무력했다. 후설에 따르면 이러한 결과는 우리에게 대상이 주어지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작동하는 의식의 역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후설은 무엇보다 어떤 이론적 가정도 전제하지 않고, 사태를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방법적 전략을 통해 대상과 그 대상의 의미가 주관에게 주어지는 사태를 분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른바 ‘사태 자체로!’라는 표어는 후설 현상학의 초기 입장을 가장 잘 대변하는 말이다. 현상학적 기술적 분석의 결과 후설은 몇 가지 중요한 통찰을 얻게 된다. 그중 하나는 의식의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구조로서의 지향성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우리가 본질을 직관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본질 직관은 이론적이고 필연적인 지식의 가능 근거라는 점에서 엄밀학으로서의 철학을 목표로 삼은 후설에게는 중요한 방법론적 통찰이었다. ‘지향성’과 ‘사태 자체로!’는 후설 현상학을 특징짓는 중요한 개념이다. 의식의 본성에 대한 해명을 통해 철학을 엄밀한 학문으로, 나아가 개별 과학들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제1철학으로 혁신하고자 했던 현상학의 성격을 압축한 표현이다. 『엄밀한 학으로서의 철학』, 『데카르트적 성찰』을 읽는 일은 현상학의 이념적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
‘엄밀한 학으로서의 철학’을 이념적 지향점으로 삼은 현상학은 기본적으로 학문 이론(혹은 과학 철학)적 성격을 갖고 있다. 이러한 후설의 전략은 모든 학문의 이론적 가능성을 문제시하는 순간 선험적(초월론적)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예컨대, 칸트가 그랬던 것처럼 어떻게 학문 일반이 가능한가 하는 물음이 그렇다. 1913년에 출간된 『순수 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 I』은 후설의 선험적 문제의식을 포함해 그의 학문 이론적 계획 전반에 대한 입문서이다. 여기서 후설은 지향성의 구조적 분석을 포함하는 현상학적 분석의 중요한 방법론들을 제시한다. 그중 하나가 후설 현상학을 특징짓는 또 하나의 방법론인 ‘판단 중지’이다. 학문 일반의 이론적 정초를 목표로 할 때 대답해야 하는 물음은 가장 근원적인 의미에서의 정당화이다. 모든 개별 과학들이 받아들이는 가장 일반적인 전제는 바로 ‘이 세계가 존재한다’는 믿음이다. 후설은 이렇게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전제들을 믿어 버리는 태도를 ‘자연적 태도’라고 이름 붙이고, 현상학은 이러한 자연적 태도를 다시금 정당화해야 한다는 근본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한편으로 학문 일반의 이론적 가능성을 정초한다는 목표에 비추어 보면 당연한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판단 중지’는 자연적 태도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믿음의 타당성의 효력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키는 방법이다. 가령, ‘이 세계가 존재한다’는 판단의 타당성을 판단 중지를 통해 일시적으로 그 효력을 정지시키는 것이다. 이로써 드러나는 것은 바로 ‘순수한 사태’들이다. 현상학은 이러한 순수 사태들을 다루어 냄으로써 다양한 우리의 의식들이 대상을 구성하는 과정과 그로부터 얻어지는 다양한 대상적 의미 일반의 구조적 상관관계를 탐구할 수 있게 된다. 통상 ‘정적 현상학’이라고 불리는 이 시기의 작업은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저항에 부딪친다. 왜냐하면 ‘판단 중지’를 통해 세계 전체를 단번에 주제화하는 이러한 방식(후설은 이를 ‘데카르트적 길’이라고 불렀다)을 다른 사람들은 후설이 낡은 방식의 철학으로 회귀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후설 역시 나중에 이 방법이 가진 조급성을 비판적으로 회고하기도 한다. 마치 데카르트가 그랬던 것처럼, 단박에 선험적 영역으로 도약하는 것은 내용적으로는 공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적 현상학이 가진 한계는 해명해야 할 문제를 주로 논리적 가능성의 관점에서 다루었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대상이 주어지는 구조적 관계를 분석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이 실제로 어떤 발생적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지 또한 해명되어야만 하는 과제다. 후설의 ‘발생적 현상학’은 이러한 과제가 반영된 것이다. 발생적 현상학의 주요 과제들과 그에 대한 현상학적 작업은 주로 후설의 유고에 담겨 있는데, 조만간 국내에도 소개될 것으로 기대한다. 분명한 것은 정적 현상학이든 발생적 현상학이든, 그 주요한 문제의식은 ‘선험적’이라는 데 있다. 후설 현상학의 선험적 면모와 학문 이론적 기획이 분명히 드러난 작품은 『순수 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 시리즈이며, 『형식 논리학과 선험적 논리학』, 『경험과 판단』 등을 읽는 것도 그의 선험적 현상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
|
|
후기에 들어 후설은 학문의 가능 근거를 탐색하는 선험적 문제 영역으로 가는 다양한 길을 모색한다. 그중 하나는 의식 작용의 논리적 구조와 작용의 발생적 측면을 해명하는 심리학을 통한 길이다. 이러한 경로는 그의 유고 중 강의록과 발표 원고 등을 모아 편집한 책인 『현상학적 심리학』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비록 초기 『논리 연구』를 통해 심리학주의를 비판하였지만, 후설이 심리학 자체를 비판한 것은 아니다. 심리학적 연구는 여전히 인간의 의식을 구체적으로 탐색할 수 있게 해주는 학문이다. 다만 후설은 경험 심리학(경험 심리학 역시 그 자체로 고유한 가치를 갖고 있다)으로는 해명되지 않는 의식 작용의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특성을 해명하는 현상학적 심리학이 철학의 오래된 수수께끼를 푸는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보았다. 후설의 발생적 현상학의 면모를 볼 수 있는 또 다른 작품 중 하나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한, 『유럽 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이다. 후설 이후의 현상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개념 중 하나인 ‘생활 세계’ 개념이 본격적으로 다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후설의 현상학이 관념론이라는 오해를 불식시킨 작품이기도 하다. 여기서 후설은 판단 중지를 통해 선험적 영역에 이르는 길 외에 또 다른 경로를 제시한다. 생활 세계는 말 그대로 우리 주변의 일상의 세계이다. 따라서 객관성과 보편성이 지배하는 이론적 세계와는 달리 주관 상대적인 의미들로 구성된 세계이기도 하다. 하지만 후설에 따르면 이 생활 세계가 모든 이론적 구성물들의 가장 구체적인 의미 토대이다. 어떤 추상적인 학문도 궁극적으로는 그 의미의 뿌리를 생활 세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발생적 현상학의 탐구 결과이기도 했다. 생활 세계가 없다면, 어떤 이론적 과학도 가능하지 않다. 근대 과학의 잘못은 객관성이라는 이념을 위해 이 생활 세계의 의미론적 기능을 무시하였으며, 자연스럽게 그 생활 세계의 주체인 주관을 배제하는 길로 나아갔고, 그것이 결국은 학문에서 ‘인간’의 문제를 배제하게 만들었다고 판단한다. 여기서 후설은 주관성으로서의 이성의 참된 권위 회복을 시도한다. 사실 후설의 이러한 논의는 그가 겪는 시대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기도 했다. 후설은 자신의 시대를 ‘문명의 위기’로 규정한다. 그리고 그 위기의 궁극적인 원인을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상실로 진단한다. 생활 세계적 현상학을 통해 후설은 우리의 학문적 탐구 활동 전체의 목적론적 이념을 분명히 한다. 그것은 이성적 인간의 완성이다. 단순히 지식의 문제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이성적 판단에 기초해서 행위하고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이성적 인간의 완성이 바로 학문의 이념이라는 것이다. 후설 현상학의 원전을 혼자서 독파하기는 쉽지 않다. 무턱대고 도전했다가는 고배를 마시기 쉽다. 따라서 현상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우선 현상학에서 사용되는 개념들, 예를 들면 ‘지향성’이나, ‘판단 중지’, ‘본질 직관’ 등의 개념들부터 친숙해지는 것이 필요하다. 시중에 나와 있는 현상학 입문서를 곁에 두고 후설의 원전을 읽어 나가거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읽는 것이 좋다. 아울러 후설의 원전 중에서 가장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은 『엄밀한 학으로서의 철학』이다. 어려운 산이지만 일단 오르고 나면 훨씬 멀리 볼 수 있듯이, 후설의 사상을 이해하는 것은 현대 철학의 전체 개념도를 그려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셈이므로 독자에게 도전하기를 권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