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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 필요한 책, 오래갈 책 -설문원, 《기록학의 지평》(조은글터, 2021)을 읽고- 나는 여전히 가끔 어리석음에 빠진다. 책을 사려다가도 학술적으로 보이거나 두꺼우면 멈칫한다. 편견이다. 그러나 학문의 열정으로 탄탄함을 갖춘 책은 오래 간다는 것은 경험상 알고 있다. 그런 책은 늘 참고로 찾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껴먹는 과자처럼 야금야금 맛을 보는 기쁨까지 누리게 된다. 두꺼운 책이 반드시 좋은 건 아니지만, 이런 책은 조금 두꺼운 게 좋다. 아껴 먹을만큼 맛있는 과자가 많기까지 하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나는 지금 그런 책을 소개하는 희열에 차 있다. 친구와 주고 받은 편지, 공들여 쓴 일기장, 감추고 싶은 성적표 등, 내 생활은 기록으로 흔적을 남긴다. 멀리 조선실록에서 1948년 헌법초안, 주민등록증 그리고 곧 받아들 투표용지까지, 우리의 사회생활 역시 이렇게 기록을 남긴다. 역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아니 이것을 벗어나 역사는 없다. 이 기록(Archives)을 어떻게 생산하고 보존할 것인가?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과연 인간에게 기록은 무엇인가? 아니 기록이란 정말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하는 학문이 있다. 기록학이다. 그러니까 기록학은 우리 삶과 닿아있다. 설문원 저, 《기록학의 지평》은 기록학에 대한 탐구이다. 20년 이상 이 분야에 몰두한 저자의 공력이 담겨 있다. 목차만 일별해도 느낌이 온다. 개념과 정의를 출발로, 증거, 기억, 정체성, 공동체라는 키워드를 기록-세계를 이해하는 패러다임으로 구분하여 편목을 짰다. 물론 이들 키워드에 해당하는 기존 연구를 저자 나름대로 곱씹어서 자신의 연구로 발전시킨 것들이다. 한국사회에서 기록학이 운위된 지 채 한 세대도 지나지 않기는 했지만, 저서의 수준에서 볼 때 《기록학의 지평》이 첫 번째 학술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동안 많은 논문, 보고서, 의견, 통찰이 있기는 했지만, 기록학 분야를 나름대로 소화된 언어로 체계성을 갖추어 제출한 첫 모노그라프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기록학의 ‘지평’이기도 하지만, ‘기록학의 디딤돌’이기도 하다. 기록학 입문자는 이 책에서 시작하면 된다. 나는 기록학은 역사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언젠가 나는 ‘기록학이 역사학을 구제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현재 대학의 역사학은 막 피기 시작한 기록학이 구제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현재 한국 대학의 역사학은 아주 작은 부분의 역사학만을 탐구할 뿐이다. 왜소해진 이유 중 하나가 기록학적 인식과 접근의 결여라고 나는 본다. 그런 점에서 ‘대학의 역사학도’들에게는 더욱 이 책 《기록학의 지평》을 권하고 싶다. 역사학의 ABC는 여기서 출발한다고. 역사공부를 좋아하는 시민, 학생들에게도 이 책 《기록학의 지평》을 권하고 싶다. 우리의 삶의 흔적, 인생과 역사를 ‘기록의 이름으로’ 깊고 넓게 보게 해줄 안목이 이 책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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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고 든든한 ‘평화-보훈’의 길 - 보훈교육연구원의 ‘보훈문화총서’(전7권) 간행에 부쳐 - 보훈교육연구원(원장 이찬수)이라는 곳이 있다. 국가보훈처 산하이자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에 소속된 공공기관이다. 여기서 작지 않은 분량의 책들이 나왔다. 이른바 ‘보훈문화총서’인데, 7권이나 된다. 이건 1차 출간이고, 올해 2차로 7권을 또 낸다고 한다. 국가보훈처도 낯선데, 그 소속기관인 보훈교육연구원은 더 낯설리라. 보훈? 그게 뭐지? 일상적으로 만나기 어렵고 어색하지만, 대략 전쟁에서 죽은 사람에게 훈장 주고 그러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분 많을 것이다. 나아가 ‘보훈문화’라고 하면? 보훈에도 문화라는 걸 붙이나, 하는 분들 역시 꽤 있을 것이다. 이해가 간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국립묘지가 연상되거나 군인들에 대한 보상을 하는 곳 정도로 생각하던 국가보훈처가 관심의 언저리에 들어온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보훈에 대한 기억
2017년, 5.18 하루 전날, 피우진 중령이 장관급으로 격상된 보훈처 처장으로 임명되었다. 대위 시절, 여군 부사관을 술자리로 불러낸 상관의 명령을 받고 전투복을 입혀 보냈다는 일화로 알려진 분이었다. 그 일로 피우진 중령은 내게 대장 같은 중령으로 다가왔다. 이명박 정부 시절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조차 부르지 못하게 했던 일을 기억하기에 피우진 중령의 보훈처장 임명은 시대 변화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이후 국가보훈처는 시대에 걸맞은 변화를 위해 대대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2018년, 안팎의 힘을 모으기 위해 조직된 것이 ‘국민중심 보훈혁신위원회’였고, 거기 참여하여 부족한 역량이나마 보탤 수 있었다. 보훈처의 혁신 과제를 정리하고 그걸 보훈처 담당자들과 협의하여 개선 방향을 찾아나가는 자리였다. 혁신위원들은 한 나라에서 보훈이 사회적 가치와 비전을 담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직원들은 보훈처 혁신이 그들의 자긍심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마치 국방부 출장소 같은 부처 환경에서도 꾸준히 개혁을 위해 노력했던 분들이 적지 않았다. 그렇게 곪거나 취약한 부분은 새 살이 돋아나고 있었다.(이 활동의 결과는 1) 보훈처 위법 및 부당행위 재발 방지, 2) 독립운동 보상과 예우, 3) 공정성과 형평성 강화, 4) 보훈처 위상과 역량이라는 네 부문에서 권고안으로 정리되었다.)
시민 곁으로 돌아온 보훈
보훈교육연구원의 이번 총서는 위 권고안의 이론적 기초의 성격을 띤다.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자. 보훈(報勳)은 ‘공훈에 보답한다’는 뜻이다. 「국가보훈기본법」의 표현을 가져오면, “국가를 위하여 희생하거나 공헌한 사람의 숭고한 정신을 선양하고 그와 그 유족 또는 가족의 영예로운 삶과 복지향상을 도모하며 나아가 국민의 나라사랑정신 함양에 이바지”하는 행위이다(제1조). 보훈은 네 가지 범주로 이루어진다. ‘독립’, ‘호국’, ‘민주’라는 세 범주에 ‘사회공헌’까지 보태 넷이다. 이번에 발간된 1차 ‘보훈문화총서’의 제목과 목차를 보면 현재 보훈을 고민하는 지점을 알 수 있다. 먼저 7권의 제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복지로 읽는 보훈』, ② 『보건으로 읽는 보훈』, ③ 『보훈의 여러 가지 얼굴』, ④ 『남에서 북을 다시 보다: 탈북 박사들이 보는 북한의 보훈』, ⑤ 『통일로 가는 보훈』, ⑥ 『보훈3.0: 시민과 함께 보훈 읽기』, ⑦ 『가족과 함께 하는 보훈』. 일반인을 위한 보훈 관련 단행본이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어느 하나 의미 없는 책은 없다. 그 중에서도 제4권은 돋보인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 북한 보훈 정책의 모든 것(이철) ○ 북한의 보훈: 정치적 보상(현인애) ○ 북한 보훈제도: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강채연) ○ 북한의 보훈과 제재, 법제는 현실적합한가(채경희) ○ 북한 보훈과 영웅 상징화(엄현숙) 위 필자들은 전부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연구와 강의로 헌신하고 있는 탈북자들이다. 탈북 연구자들이 ‘북한보훈론’을 소개했다니, 남과 북의 대결 구도로 탄생한 보훈제도가 다시 남북 간 통합에 기여할 수 있다는, 아니 기여해야 한다는 역설적인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어서 통일연구원과 공동 기획하여 출판한 제5권 『통일로 가는 보훈』도 의미 있고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그 뿐 아니라 이번 총서는 복지(제1권)와 보건(제2권)을 포함해 법, 정치, 사회,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한국 보훈의 전반적 현실을 분석하고 대안도 모색하고 있다. 각계의 전문가 30명 이상이 참여한 전례 없는 출판물이다. 해본 분은 알겠지만, 이 정도의 책을 만드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고민의 흔적들
격동, 격변, 다사다난이라는 말조차 불경스러운 지난 100년 이 땅의 역사를 돌아볼 때 보훈의 개념과 정의, 새로운 비전을 찾는 데 어찌 고민이 없었을까? 인간의 가치와 정치이념이 부딪히고, 낡은 철학과 새로운 전망도 긴장을 형성하였다. 이 땅의 역사는 보훈의 주요 가치들인 독립, 호국, 민주 혹은 사회공헌의 실제 내용이 서로 충돌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북한과의 전쟁 경험에서 출발한 ‘호국’의 가치와 다원성을 중시하는 대북 포용적 ‘민주’의 가치가 부딪힐 수 있다. 이뿐이랴, 해방공간에서의 독립과 호국, 70년대의 호국과 민주, 나아가 현재의 민주와 사회공헌에 이르기까지 흐릿하거나 대립하는 여건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주제는 곳곳에 놓여 있었다. 하나 더 덧붙이면, 공훈에 보답하는 주체가 ‘국민’이라기보다는 ‘국가’라는 인식이 강하다는 것도 문제다. 이는 「국가보훈기본법」의 탓이 크다. 거기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보훈정책을 시행하고 국민은 그에 협력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훈이 정의되어 있다. 이상한 방식의 국민 소외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나나 독자들께서 보훈이 멀게 느껴진 건 우연이 아니었다. 보훈과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은 당연한 의무일 수밖에 없다.
평화로운 사회를 위한 보훈
이런 고민과 시도가 어찌 한 번에 답을 찾겠는가. 답을 찾았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다만, 이번 1차 ‘보훈문화총서’를 관통하는 희망이랄까, 나침반은 있는 듯하다. 획일적 범주에 갇히지 말고 인간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보편적 인류애를 다시 불러내는 것, 그걸 한 마디로 하면 ‘보훈의 평화-모델’일 것이다. 제4권과 5권에서 적대적 대북관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를 한 것도 그 예이다. 굳이 그 부분만이 아니더라도, 인간의 평화는 무엇보다 몸의 건강, 관계의 따뜻함, 마음으로 느끼는 든든함, 미래에 대한 안정감에서 온다. 보훈이 그런 다정다감한 평화의 모습을 띠고 있음을 보여주려고 한 점만으로도 이번 총서의 가치는 넉넉하지 않을까. 보훈의 이미지가 우리 국민들에게 멀게 느껴지고, 심지어 정치군인들의 전유물처럼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다보니 시민들을 위한 보훈 소개 단행본도 거의 없다.?두텁지 않게 들고 다니며 볼 수 있게 만든 것도 장점이다. 이를 계기로 서로 보듬고 따뜻하게 위로하는 평화의 보훈이 시민들의 일상에서 느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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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도 모르면 빨래판이다
- 아는 것 같은데 잘 모르고 있는 역사 용어 상식 톺아보기
ㅣ
대한민국 역사상식 1
Choice
전병철
(지은이) |
살림터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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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역사는 참고문헌이거나 이야기책이다. 참고문헌이면서 이야기를 묻어두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팔만대장경도 모르면 빨래판이다』는 역사를 읽을 때 문득 궁금해지는 용어, 개념, 주제, 줄거리에 대해 정리해놓은 책이다. 또한 역사를 보는 다양한 시각을 정리해놓은 책이다. 나의 견해와 다른 데도 있기는 하지만, 저자의 방점은 자신의 견해를 강요하는 데 있지 않다. 저자의 노력 덕분에 두런두런 이야기를 들으며 역사 공부하면서도 실수를 줄일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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