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헤더배너
상품평점 help

분류

이름:뤼디거 자프란스키 (Rudiger Safranski)

최근작
2021년 12월 <하이데거 (특별보급판)>

뤼디거 자프란스키(Rudiger Safranski)

1945년 독일에서 태어나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철학, 독일문학, 역사를 전공하고 1976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펜PEN클럽 회원이자 독일언어및문학아카데미Deutsche Akademie fuer Sprache und Dichtung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2년부터 10년 동안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와 함께 독일 공영방송 ZDF에서 “철학 사중주”를 진행했다. 2012년부터 베를린자유대학 철학과에서 명예교수로 가르치고 있다.
2006년에는 “벨트 문학상”과 “프리드리히 횔덜린 상”을 수상했고, 2009년에는 “코리네 상”과 독일 1급 공로십자훈장을, 2000년에는 프리드리히 니체 상을, 2011년에는 알고이 철학 상을, 2014년에는 “요제프 피퍼 상”과 “토마스 만 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는 사상사 평전의 최고 작품으로 꼽히는 《E. T. A. 호프만》, 《쇼펜하우어》, 《니체》, 《괴테와 실러》, 《괴테》 등과 《인간은 얼마만큼의 진실을 필요로 하는가?》, 《악 또는 자유의 드라마》, 《인간은 얼마나 많은 세계화를 감당할 수 있는가?》, 《낭만주의》, 《시간》 등이 있다.  

대표작
모두보기
저자의 말

<낭만주의> - 2012년 2월  더보기

1800년경 사람들이 ‘낭만파’라고 불렀던 것, 슐레겔 형제 주위로 몰려든 사람들이 발행기간은 짧았지만 격정적이었던 잡지 <아테네움>를 통해 이루어졌던, 자신만만했지만 가끔 독단적이었던 선언, 피히테와 셸링 철학의 시작을 알리는 폭발적인 사유의 정신, 티크와 바켄로더의 매력적인 초기 단편소설에 나타난 과거에 대한 동경과 새로이 인식된 ‘경이로운 사건’의 의미, 밤과 문학적 신비주의에 경도하는 노발리스의 작품, 새로운 시작에 대한 자부심, 새로운 세대의 활기찬 정신, 이와 동시에 혁명의 자극을 정신과 문학의 세계로 옮기기 위해 생각은 신중하고 행동은 경쾌한 젊은 세대의 등장 등, 이 모든 움직임에는 물론 그 이전의 과정, 즉 그 시작에 앞선 시작이 있었다. 자긍심이 대단했던 젊은 사람들은 새로운 시작을 감행하려고 함과 동시에 한 세대 앞선 ‘질풍노도’가 이미 시작했던 것 또한 계속 이어갔다. 독일의 루소라고 불리는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가 거기에 자극을 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낭만주의의 역사는 헤르더가 1769년 프랑스로 항해를 시작한 그 순간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헤르더는 그 당시 리가에서의 답답한 생활환경에 진저리가 나서 황급히 도망치듯 항해에 올랐다. 리가에서 헤르더는 젊은 목사로서 엄격한 교리를 따르는 사람들과 다투어야 했으며 성가신 문학논쟁에 연루되어 있었다. 항해 도중에 헤르더에게 떠오른 생각들은 비단 자기 자신만을 고무한 것은 아니었다. 헤르더는 근심스럽게 바다로 나아간다. 여기서 낭만주의와 독일문화에서 ‘낭만적인 것’의 흔적을 찾는 우리의 여행이 시작된다. 이 여행은 낭만주의자들이 자신들의 본거지를 마련하고 생각의 불꽃을 태웠던 베를린, 예나, 드레스덴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낭만주의자들은 꿈을 꾸고 비판하고 환상의 나래를 펴지 않았던가. 좁은 의미의 낭만주의 시기는 아이헨도르프와 E.T.A. 호프만에 이르러 끝난다. 이들은 낭만주의의 정점을 이루었던 예술가들이었지만 다른 분야와도 관련을 맺고 있었다. 한 사람은 독실한 가톨릭신자이자 참사관이었고, 자유주의를 표방하던 다른 한 사람은 고등법원의 판사였다. 이 두 사람의 이중생활은 낭만주의에만 국한되지 않았고, 영리하고 현실적인 낭만주의의 이면을 보여주었다. 이 책에서는 낭만주의와 ‘낭만적인 것’을 다루고 있다. 낭만주의는 한 시기이고 낭만적인 것은 한 시기에 국한되지 않는 정신자세이다. 이 정신자세는 낭만주의 시대에 완전히 표현되었지만 그 시대에 제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낭만적인 것은 오늘날까지 계속된다. 그것은 독일적인 현상만은 아니지만 독일에서 특히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모습은 너무나 강렬해서 외국에서는 가끔 독일문화를 낭만주의나 낭만적인 것과 동일시 할 정도이다. 낭만적인 것은 그것을 극복하고 싶었던 하이네나 그의 친구인 칼 마르크스에게도 나타난다. ‘삼월전기’ 는 낭만적인 것을 정치에, 그리고 민족과 사회의 꿈속으로 옮겨놓았다. 그 다음에 낭만주의자가 되려고 하지 않았던 리하르트 바그너와 프리드리히 니체도 디오니소스의 제자들이었다. 1900년경의 청년운동도 거침없이 낭만적인 것이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토마스 만과 다른 작가들은 유럽 문명에 맞서 독일의 낭만주의 문화를 지켜야만 한다고 믿었다. 불안했던 1920년대는 갑자기 늘어난 사이비 종말론자들, 종교적이거나 정치적인 단체들, 동양을 동경하는 사람들에게 낭만적 자극의 온상이었다. 사람들은 위대한 순간 즉, 정치적 해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존재에 적합한 정치라는 하이데거의 정치적 비전은 치명적인 정치적 ‘낭만주의’로 빠져들게 되었고, 결국 그는 나치 혁명을 지지하게 된다. 나치즘은 얼마나 낭만적이었을까? 나치즘은 혹시 야만화된 낭만주의라기보다 타락한 합리주의가 아니었을까?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는 “야만적인 사건을 너무 고상하게 해석한 것” (토마스 만)은 아닐까? 말하자면 낭만주의를 법정에 세우지만 그 자체는 낭만주의 소설이 아닐까? 그리고 나서 전후시대의 각성에 이어 낭만적인 것에 의구심을 갖는 ‘회의적인 세대’가 온다. 기이한 독일정신의 풍경을 돌아보는 여행은 일단 비교적 규모가 컸던 낭만적 궐기에서, 즉 1968년 학생운동과 그 결과들과 더불어 끝난다. ‘낭만적인 것’에 대해 가장 잘 내린 정의는 노발리스의 정의이다. “나는 세속적인 것에 고상한 의미를, 평범한 것에는 신비에 찬 모습을, 널리 알려진 것에는 미지의 품위를, 유한한 것에 무한한 빛을 부여하면서 그것을 낭만화한다.” 이 정의에서 사람들은 낭만주의의 토대가 종교와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낭만주의는 200년 전부터 끊임없이 이어져오는 ‘찾기 운동’에 속하며, 세속화되고 탈마법화된 세계에 저항하려는 운동이다. 낭만주의는 다른 많은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미학적 수단에 의한 종교의 지속’을 의미한다. 이렇게 하여 낭만주의는 상상에 전례 없는 높은 지위를 부여하게 되었다. 그래서 낭만주의는 현실 원칙을 넘어선다. 따라서 만약 낭만주의가 정치적인 것 속에서 길을 잃으면 시문학에는 좋지만, 정치에는 나쁜 영향을 미친다. 바로 여기에서 낭만적인 것과 더불어 우리의 문제가 시작된다. 낭만주의 정신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음악적이고 실험적이며 유혹적이다. 그 정신은 아득한 미래와 과거를 사랑하고, 일상에서의 놀라운 일이나 극단적인 것, 무의식적인 것과 꿈, 광기와 성찰의 미로를 사랑한다. 낭만주의 정신은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 모습을 바꾸고, 모순적이며, 무언가를 동경하고 냉소하며, 이해할 수 없는 것에 홀딱 빠지고 대중적이며, 아이러니하고 열광적이며, 자기사랑에 빠졌지만 사교적이며, 형식을 의식하지만 형식을 해체한다. 만년에 괴테는 낭만적인 것은 ‘병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괴테도 그 낭만적인 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 저자 서문
가나다별 l l l l l l l l l l l l l l 기타
국내문학상수상자
국내어린이문학상수상자
해외문학상수상자
해외어린이문학상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