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성은 유씨劉氏이고, 본향은 중원中原이며, 1376년(고려 우왕 2)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유교를 배웠고, 자라서는 성균관에서 새로 도입된 성리학을 배우던 유교 지식인이었으나, 동무의 죽음을 계기로 관악산 의상암에서 출가하였는데, 조선이 개국한 뒤인 1396년(태조 5)의 일이다.
그 뒤 양주 회암사에서 무학 자초無學自超의 가르침을 받고 한동안 머물며 수행하였으며, 공덕산 대승사, 천마산 관음굴, 자모산 연봉사, 어찰 대자사 등에서 영가추천법회와 강설 등을 행하였다. 말년에는 희양산 봉암사를 중건하고 그곳에서 머물렀으며, 1433년(세종 15) 4월 1일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처음 법명은 수이守伊, 법호는 무준無準이었는데, 1420년에 기화己和와 득통得通으로 바꾸었다. 여기에 당호인 함허당涵虛堂을 더하여 ‘함허당 득통 기화’라 부른다. 기화는 나옹에서 무학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이어받은 선승이면서도 『금강경』과 『원각경』을 주석하고 반야강석般若講席을 비롯한 강경법회講經法會를 여러 차례 여는 등 교학의 영역에서도 뚜렷한 자취를 남겼다. 저술로는
『금강반야바라밀경오가해설의金剛般若波羅蜜經五家解說誼』·『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설의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說誼』·『선종영가집과주설의禪宗永嘉集科註說誼』·『현정론顯正論』 등이 남아 있는데, 모두 『한국불교전서』 제7권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