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장편소설을 계획했었는데…, 소설집을 먼저 내야겠다는 결심으로 돌아서게 된 것이 꿈만 같다. 그 동안 개발제한구역 주민들의 부당함을 더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장편에만 몰두하다보니, 2010년에 소설집을 내고는 9년이라는 길다면 긴 기간에 각 문학지에 게재된 단편들이, 이미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내 것에 대한 강한 애정이 솟구쳤다. 즉시 하나하나 찾아내어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 시선에 비친 사회 곳곳에 산재되어 있는 부조리와 놓쳐버릴 수 없는 삶의 진실, 아름다운 추억들에 이어 인간의 야망으로 침몰되어가던 양심을 건져 올려보겠노라고 안간힘을 쓰던 내 몸부림의 현장이 조금씩 깨어나나 싶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두려움이 엄습했다. 나로서는 그래도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기에 혼란스럽다고 해서 소중한 분신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다행히 느린 걸음이지만 쉬지 않고 계속하여 창작의 끈을 놓치지 않았던 터라, 그 여파를 몰아 살을 붙이고 또 떼 내야 하는 작업 역시 만만찮은 옥죄임과 인고의 시간을 요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다행히 출판사 청어를 만나 계속되던 갈등을 해소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런 저런 복잡다단함 가운데서도 내 삶의 의미를 부여해 주는, 소중한 가족들이 있다는 사실은 나를 매우 든든하게 한다. 거기다가 전혀 보장되지 않은 또 하나의 도전에도 힘이 되어주니 감사하다. 이들은, 언제나 내 의식을 지배하고 있어서 그 어떤 순간에도 영혼까지 좌우한 채 삶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그들을 향한 해바라기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내 삶을 지탱하는데 필수요건이 되어 주는 것 역시 변함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리움으로 휑하니 빈 가슴이 채워지지는 못해도 좌절하지 않고 기대감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 즉 내 생존의 이유이자 현존케 하는 가장 소중한 무기로 작용해 준다. 비록 창작의 과정은 고달프고 긴 인내를 요구하지만, 자손들의 흔적을 인질로 그들의 노력에 뒤지지 않을 만큼 나를 연마해 보겠노라는 소망은 물론 내 손이 미치지 못하는 아주 먼 그들과의 거리가 오히려 나를 견고하게 하는 요건이 되리라 기대한다. 내가 존재하는 한, 미미하게 시작된 한 그루의 나무들이 더 단단한 뿌리로 어떠한 땅에서도 뻗어 나기기를 꿈꾸며 기도할 것이다. 비록 지금은 내 손이 닿지 못하는 먼 이국땅으로 훌쩍 다 떠났기에 당연히 서럽고 그립지만, 그럴수록 창조주의 위대한 손과 시선을 더욱 신뢰하게 된다. 그리움과 한이 여생 가운데서 못다 해갈된다 해도, 나는 여전히 소설 창작으로 안정과 평안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할 일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