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버지가 자녀에게 어떤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고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묻는데, 이런 밥상머리 교육을 ‘하브루타’(Chavruta)라고 한다. 하브루타에는 색다른 답은 있어도 틀린 답은 없다. 서로 질문하고 답하는 사이 공감하게 되고, 생각의 차이에 대해 이해하는 마음이 생긴다고 한다.
사회생활의 기본을 배우고 참다운 인성을 갖춘 사람으로 키우는 데는, 어렸을 때부터 가정에서의 밥상머리 교육이 중요하다. 특히, 학교생활을 통해 자신이 사회적 존재로서 많은 사람과의 상호관계를 어떻게 맺어갈 것인지를 배우고 느낄 기회인 인성 함양을 위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시대를 살아온 기성세대로서 나는 일 핑계로 성장해가는 자녀들과 살뜰하게 소통하지 못했다. 그것은 아버지로서 회한과 아쉬움으로 늘 남는다. 이탈리아 언론인 티찌아노 테르짜니(Tiziano Terzani)가 생의 끝자락에서 아들과 나눈 대화를 엮은 "네 마음껏 살아라" “아버지란 ‘추억을 심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지. 여러 경험을 함께 하면서 아름다움과 위대함에 관한 기억을 많이 남겨 주고 싶었어”라는 말이 있다. 나에게도 어린 시절 밭에서 김매기 할 때 아버지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곤 했다. 그런데 나는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거리를 남겨 놓은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이제 나도 언젠가 이 세상에 없고, 그들만 남겨지는 때를 염려하고 있다. 인생 이야기를 하기에 적당한 때가 오려니 하고 무작정 시간을 기다릴 수도 없다. 글을 쓰게 된 이유다. 그들의 삶을 좀 더 성숙하게 완성해 나가는 데 돕고 싶기 때문이다. 메이시(W. H. Macy)가 말한 것처럼 세상을 살면서 부닥치게 될 장애물들을 헤쳐나가는 데 “가장 훌륭한 기술, 가장 배우기 어려운 기술인 세상을 살아가는 기술”에 대해 인생 선배로서 말해 주고 싶은 거다. "명심보감"에 “지극한 즐거움 중 책 읽는 것에 비할 것이 없고, 지극히 필요한 것 중 자식을 가르치는 일 만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인생은 공부 이외에 인간관계, 시간 관리, 감정 조절, 소통 능력, 실행력, 판단력, 자기 관리, 습관, 지혜, 인성 등에 영향을 받는 경우가 더 많다. 이것을 가르쳐 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제외되고 있다. 오늘날 젊은 세대의 학력은 높아졌지만 상식은 부족하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생각하는 힘은 약하다고 보는 게 기성세대의 생각이다. 그들이 살아갈 세상은 경쟁이 치열하고 홀로 자립하는 것이 무척 고단한 일이 되고 있다. 그래서 이에 당당히 맞서는 삶의 자세를 요구받고 있다. 이를 위해 젊은 세대들이 효과적으로 학습하는 방법의 하나는 부모 세대로부터 경험을 전수받는 것이다. 부모 세대가 삶을 통해 평생 깨닫고 배운, 인터넷보다 더 정확하고 생생한 꼭 알아야 하는 지혜는 전수받을 필요가 있다. “한 사람의 아버지가 백 명의 스승보다 더 낫다”고 영국 시인 조지 허버트(George Herbert)는 말했다.
세상사는 기술은 단기간에 터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생에는 그 시기에 이르러야만 알게 되는 것들도 있기 때문이다. 젊을 때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오는 막막함이 두렵다. 그래서 인생에서 스스로 터득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다. 이 글은 사는 게 힘들고, 지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나가야 할 길이 보이지 않을 때 한 번쯤 이 글을 기억해내고는 아버지와의 옛날을 회상해 보며 삶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 것이다. 그것이 그나마 내가 아이들에게 빚을 갚는 보상이 아닐까 한다.
그대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쁘게만 삶을 살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닫지 않도록 혹은 미리 알고서 삶을 배우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탈리아 속담에 “인생은 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 사는 것”이라는 말도 기억하라는 것이다. 아쉬움 속에 사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가급적 아쉬움을 덜 남기는 아름다운 삶을 살라는 것이다.
즐겁고 행복한 “여유 있는 삶”을 위해서는 시간적, 경제적, 심리적 여유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서툴더라도 먼저 자신의 인생을 전체적으로 그려 보고, 숲과 나무를 채우는 능동적인 삶을 가져가도록 하라는 것이다. 행복한 삶을 위한 조건이 어디 한두 가지일까 마는 여유로운 시간, 경제적 측면에서 여유로운 지갑, 그리고 마음의 여유가 확보돼야 할 것이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시간적 여유에 대해 보면 인생 여정에서 공통적으로 부딪칠 수 있는 사안들을 찾아 미리 그 내용을 살펴보거나 정신적으로 대비해 둔다면, 그러한 일들에 마주쳤을 때 당황하지 않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 정신적·시간적 여유로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본다.
이 글은 사회생활을 앞둔 아들·딸에게 전하는 아버지의 인생 이야기다. 특별한 것 없는 보통 아버지가 살아온 삶의 경험을 돌아보고 후회와 아쉬움, 바램 등을 모아 본 것이다. 사람은 각자가 다양한 인생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서로 다른 인생을 꿈꾼다. 그래서 보편적 해답을 제시한다거나, 성공적인 삶을 달성하는데 쉽고 빨리 이룰 수 있는 비법을 제시하는 글이 아니다.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고 이미 세상에 나와 있는 뻔한 이야기다. 그래서 공감되는 부분은 함께 하고, 부족한 또는 가보지 않은 영역에 대해서는 그리고 파고들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그대들의 지혜와 경험으로 확장적으로 채워나가기를 바란다. 읽는 편익을 굳이 묻는다면, 이 글은 인생 항로에서 부딪칠 수 있는 세상 사는 이야기에 대해 세밀한 각론이 아닌 개괄적 총론 측면에서 윤곽을 담아본 것이다. 스페인 출신의 프랑스 화가 피카소(P. Picasso)가 “유능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고 했지만, 이 책은 흉내도 내보지 못한 ‘한입 컨텐트’에 가까울 수 있다.
우리 삶의 성공과 행복을 위해서는 그동안 실천하지 않았던 것들을 불러내어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이를 위한 지혜는 오래전부터 선현들이 발견해 다 나와 있다.
“과거에 빚지지 않은 현재는 없다.” 이 책도 선현들의 지혜인 속담이나 명언 등을 많이 인용하는 형태로 문장을 구성해 엮었다. 이유는 나의 짧은 문장력을 대체할 수도 있지만, 그들이 글의 주제에 가장 압축적이고 본질에 가까운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모자람이 많은 이 책을 읽어 내려갈 여러분 모두의 삶에 아름다운 행운이 함께 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