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북감리회의 개척 선교사. 1888년 5월 한국에 와서 20년간 서울과 인천, 강화 지역에서 활동했으며, 1892년 제물포 선교 관리 책임자로 부임하여 내리교회의 제2대 담임목사가 되었다.
1893년 제물포에서 신학반을 열어 한국 목회자 교육을 시작했으며, 첫 한글 찬송가 《찬미가》(1892), 첫 잡지 《Korean Repository》, 첫 신학 잡지 《신학월보》(1900?1909) 등을 편집, 발행했다. 뛰어난 한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한국 역사와 종교, 문화, 풍속에 두루 정통한 학자로서 많은 한국학 자료들을 저술하여 해외에 소개했다.
1909년 귀국하여 보스턴대학교와 디포우대학교에서 선교학과 비교종교학을 가르쳤고, 한국 교회와 종교, 역사, 문화에 대한 저술 활동을 했다. 뉴욕 북감리회 선교부 총무로 임명된 후에도 한국 선교를 직·간접적으로 계속 지원했으며, 한국 선교 25주년 기금 모금 운동을 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