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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강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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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안즈민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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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욱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졸업하고 러시아과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꿈꾸던 고고학을 평생의 업으로 살고 있으며, 현재 경희대학교 사학과 교수 및 한국 고대사・고고학연구소 소장이다. 유라시아와 고조선의 고고학을 주로 연구하며 우리의 과거를 좁은 한반도의 틀을 벗어나서 넓게 보고자 한다. 지은 책으로는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 『황금, 불멸의 아름다움』 『세상 모든 것의 기원』 『우리의 기원, 단일하든 다채롭든』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테라 인코그니타』 『유라시아 역사 기행』 등 다수가 있다. JTBC ‘차이나는 클라스’, EBS ‘클래스ⓔ’에 출연했고 <한겨레>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에 칼럼을 연재하며 고고학의 진정한 매력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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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안즈민 일기> - 2024년 11월  더보기

국립중앙박물관의 고조선실에는 비파형동검과 관련된 다양한 청동기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그중 하나는 중국 다롄시 강상 무덤에서 발굴된 비파형동검이다. 2008년에 남한에서 북한의 유물전시를 했을 때 복제를 해놓은 것이다. 바로 1963~65년에 활동한 조중고고발굴대가 조사한 유물의 복제품이다. 당시 남한에 내려온 유물은 바로 1963~65년에 북한과 중국의 연구자가 함께 조사한 조중고고발굴대의 역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요동~서북한 일대의 비파형동검과 관련된 유적을 고조선의 문화로 보는 견해가 고고학의 주류를 이루며 교과서에도 소개되어 있다. 누구나 당연시 여기는 고조선 연구의 시작은 바로 1950년대 말부터 1965년까지 이어진 북한과 중국의 공동 조사 사업에서 시작되었다. 1958년 리지린의 베이징대학 유학을 통해 완성된 저작 [고조선 연구](1963년 과학원출판사)의 뒤를 이어서 중국과 북한의 정치적인 결정으로 1963~65년에 이루어진 조중고고발굴대는 비록 파국으로 끝났지만, 이런 고조선에 대한 실질적인 지식을 전해주는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나는 1991년 2월에 몇 번은 복사해서 흐릿해진 북한에서 발간한 [중국 동북 지방의 유적 발굴보고](1966년 사회과학원출판사)를 처음 접했다. 당시 학부생이었지만 이미 고조선과 비파형동검을 전공하기로 마음 먹고 여러 자료를 모으던 때였다. 말로만 듣던 이 희귀한 보고서를 접하고는 부랴부랴 복사와 제본을 해두었다. 이번 책을 발간하게 된 단초가 된 30년 전의 복사본은 지금도 내 서고의 한 가운데에 꽂혀 있다. 1960년대임에도 매우 세밀하게 기록된 보고서지만 정작 이 조중고고발굴대의 보고서가 출판되었는지는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뒤늦게 안 사실이었지만 이 보고서는 북한 내에서만 통용되던 비밀스러운 자료였다. 북한과의 출입이 비교적 자유로웠던 일본 고고학계에서도 이 보고서는 미스터리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1970년대 북한을 오갔던 재일교포 고고학자 정한덕(전 부산대)이 간신히 1부를 입수해서 알려졌을 정도였다. 일본으로 넘어간 보고서는 추후 일본어로도 번역이 되어서 한국에서도 소개되었다. 정작 북한 보고서의 원본이 알려진 것은 1990년 직후였다. 우여곡절끝에 조중고고발굴대의 발굴성과를 담은 보고서는 알려졌지만, 여전히 정작 그 조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알 수 없었기에 내 고조선 연구에서 언제나 커다란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지난 2012년에 중국 베이징대학에 체재할 기회가 있어서 백방으로 조중공동발굴과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역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최근에 구제강 일기(顧詰剛日記)와 샤나이 일기(夏鼐日記)가 간행되어 1960년대 초반 중국과 북한의 고조선 연구를 둘러싼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자료가 알려졌다. 관련하여서 2015년에 연구 논문도 하나 출판할 수 있었다(북한 고조선 연구의 기원과 성립: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와 조중고고발굴대, 선사와 고대 45호). 그럼에도 전체의 면모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북한 학계와의 접촉은 완전히 막혀 있었고 또 연결된다고 한들 60여 년 전 연구활동에 대한 기록이 잘 남아 있을 가능성도 별로 없는 상황이다. 추가 연구가 거의 어렵다고 생각하던 중에 2020년에 중국에서 당시 조중고고발굴대의 실무를 담당한 안즈민의 일기 전권이 발간되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접했다. 코로나로 세상이 얼어붙어 있던 시절인지라 2021년 연말이 되어서야 그의 일기를 접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1963~65년 안즈민의 활동은 아주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단순한 일기가 아니라 실제 발굴조사를 하면서 북한과의 합작, 발굴 상황 등 그동안 베일에 갇혀 있던 당시의 상황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였다. 곧바로 나는 조중고고발굴대의 면면을 보여주는 안즈민의 일기를 번역하기로 마음먹었다. 두 나라 학자 간의 갈등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중국 최초의 국제 공동 조사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1999~2002년에 최초의 한-러 공동 조사의 실무를 러시아 측에서 담당하고 실제 발굴을 수행한 적이 있었다. 당시 한국 측은 홍형우(현 강릉원주대) 학예사가 담당했는데, 발굴의 준비 과정에서부터 두 나라의 정치·경제적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이후 현장에서도 한-러 두 나라의 갈등은 계속되었다. 같은 고고학자들이었지만 한국과 러시아는 완전히 다른 학문적 전통으로 수십 년간 독자적으로 발전해 왔다. 따라서 층위를 보는 법, 발굴 기술, 유물 정리 같은 현장 실무에서 사사건건 갈등이 있었다. 당시 내 야장에는 발굴에서의 주요한 성과는 물론이고 당시 충돌의 상황들이 고스란히 적혀 있다. 현장의 흐릿한 등불아래에서 쓰여진 안즈민의 생생한 기록을 보노라면 나도 겪었던 국제 공동발굴의 어려움의 기억이 연상되어서 쉽게 이해될 수 있었다. 안즈민의 일기 곳곳에는 북한학자들과의 현장 발굴에서 층위나 발굴 방법을 둘러싼 사소한 충돌에서 시작해서 고조선의 중심지를 찾으려는 노력에 대한 불만 등 1960년대 베일에 가려진 두 국가의 만주 고대문화를 둘러싼 갈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조중고고발굴대는 한국에서 고조선의 실체를 밝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반면에, 중국과의 역사갈등이 시작되는 착화점이기도 하다. 비록 중국의 일방적인 입장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그 과정을 여과 없이 널리 소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960년대는 해방 이후 남북한과 중국은 각각 독자적으로 고고학 연구법을 빠르게 발달시키고 있었다. 그 현장에서의 발굴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안즈민의 일기는 동아시아 고고학 연구사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다. 안즈민의 일기에 반영된 조중고고발굴대의 또 다른 의의는 중국 동북지역의 고고학 발달 과정을 잘 보여준다는 데에 있다. 당시 이 지역은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고고학을 조금씩 발달시키던 상황이었지만 여전히 독자적인 연구인력이나 발굴조사는 미약하던 상황이었다. 안즈민이라는 당대 중국을 대표하는 고고학자를 필두로 중국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와 각 지역의 박물관은 모든 역량을 집중해서 이 공동 발굴을 준비했고, 그 결과 중국 동북지역의 고고학 발달에도 적지 않게 이바지했음이 일기 곳곳에서 잘 드러나 있었다. 비록 조중고고발굴대가 북한과 중국의 정치적인 협의에 의해 결정된 것이지만, 그 준비과정에서 중국 동북지역의 고고학은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 번역을 마음먹은 직후 곧바로 안즈민 일기를 기획한 따님 안자야오 선생께 연락드렸더니 흔쾌히 번역에 동의하셨다. 그리고 나는 사전 작업으로 2022년에 [안즈민 일기]의 의의를 고조선부여사연구회에서 발표하고 한국어 및 영어 논문으로 간행했다. 이들 논문은 추후 보완되어서 본 서의 해제와 Appendix로 함께 실었다. 의욕적으로 번역을 계획했지만 다양한 일에 바빠서 번역은 제대로 진척되지 못했다. 이에 사학과에서 함께 근무하시며 중국 근대사를 전공하는 정지호 교수님께 사정을 말씀드리자 흔쾌히 번역에 동참하셨다. 고고학 관련 논문이나 저서와 달리 안즈민의 일기는 1960년대 중국의 일상생활들이 많이 등장해서 번 역에 곤란하던 차였기 때문에 정지호 교수님의 도움은 결정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1963년도 부분은 내가 번역을 하고 1964, 65년은 정지호 교수님이 맡았다. 이후 문장이나 어투는 이민숙 선생님께서 교열을 맡아주셨다. 막상 초벌 번역을 마치고 보니 다양한 유적과 상황에 대한 해제가 필요해서 시간은 한없이 길어졌다. 특히 원문에는 도면이 거의 없기 때문에 관련한 사진들을 정리해서 첨부하는 지난한 작업이 필요했다. 이 작업을 마무리하는 데에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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