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멜로드라마의 대표적인 감독. 곽지균은 이미 인정받은 원작에 기대기도 했지만 감성과 사건을 드라마 속에서 제대로 엮을 줄 아는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주로 청춘의 방황에 초점을 맞춘 정통 멜로를 연출하였고, 최민수, 강수연, 이미숙, 정보석, 강석우, 배종옥, 최수지, 이보희 등 당대 최고 스타들과 작업했다.
1954년 충남 대전에서 출생해 서울 명지대 경영학과를 다니다 중퇴하고 서울예전 영화과에 편입해 졸업했다. 1980년 <깃발없는 기수>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이후 7년간 조문진, 임권택, 배창호 감독 밑에서 조감독으로 18편의 작품을 제작하며 풍부한 현장경험을 쌓았다. 그가 조연출을 맡았던 영화로는 임권택 감독의 두 편의 영화 <우상의 눈물>(1981년)과 <만다라>(1981년) 그리고 노세한 감독의 세 편의 영화 <탄야>(1982년) <장대를 잡은 여자>(1984년) <사슴사냥>(1984년) 등이 있다.
1986년 감독 데뷔작인 <겨울 나그네>로 제25회 대종상 신인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고 동시에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하였다. 최인호 원작의 <겨울 나그네>는 당시의 멜로드라마로서는 보기 드문 강한 페이소스를 유발하는 수작이었다. 기구한 운명의 사랑이라는 전형적인 멜로물의 공식을 그대로 따른 상투적인 줄거리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어필할 수 있었던 것은 신인 감독의 재기발랄 한 연출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주인공이 자동차로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라스트 시퀀스 같은 몇몇 장면의 연출은 비장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으며, 또한 겨울 풍광을 배경으로 애잔하게 깔리는 <보리수>라든가 <사계 四季>같은 클래식 음악은 감상적 분위기를 한껏 북돋아 주었다. 감독이 서른 두 살 때 찍은 이 영화는 당시 감독 자신이 겪었던 청춘군상에 대한 자전적 감성을 제대로 담아냈으며, 또한 그만큼 순수한 열정이 녹아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 중평이다.
이후 그의 작품은 심리극을 시도했던 <두 여자의 집>(1988) <상처>(1989) 등으로 이어진다. 김수현 원작의 <상처> 역시 멜로드라마로, 그는 당시 신진 감독들이 사회적 소재를 추구하던 것과 달리 일찌감치 멜로드라마 감독으로서 자신을 규정지어갔다. <그후로도 오랫동안>(1989)은 감성적 멜로에서 벗어나 윤간 사건과 복수 그리고 육체적 고통의 극복 과정을 다루고 있는, 자극적이지만 축이 흔들린 플롯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감독이 이미 어지간히 현장 경험을 익힌 이후에 제작된 것이라 영화적 표현에 있어서 완성도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청춘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소재들을 다룬 화제작 <젊은 날의 초상>(1990)도 곽지균 감독의 필모그래피에 없어서는 안될 만큼 중요한 작품이다. 이문열 원작의 이 영화는 제29회 대종상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 감독상,촬영상, 조명상, 음악상, 녹음상, 여우조연상(배종옥)을 휩쓸었고, 곽지균은 대표적인 멜로감독이자 흥행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1992년에는 <걸어서 하늘까지>의 각색을 맡는 등 주로 정통 멜로물을 만들어오던 감독은 1994년 다소 파격적인 장르실험을 한다. 미스터리와 이중의 삼각관계 등 복잡한 구조와 음산한 심리를 드러내며 미스테리 멜로물이라고 일컬어지는 <장미의 나날>이 그것. 강수연과 이보희의 농도 짙은 연기대결로 화제를 모았지만, 흥행은 부진했다.
신경숙 원작의 <깊은 슬픔>(1997)에서 그는 멜로드라마 창작의 저력을 여전히 보여준다. <이혼하지 않은 여자>(1992)는 당시 텔레비전의 중년 스타였던 배우 고두심과 <장군의 아들>의 스타 박상민을 기용하여 중년 부인과 시한부 인생 청년과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90년대의 중흥기를 지나 그가 2000년에 내놓은 작품 <청춘>은 제목과는 달리 젊은 날의 순수와는 거리가 먼 영화였다. 오히려 젊은 날의 방탕 내지는 방황에 관한 영화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성적 관계를 맺고 게다가 한술 더 떠서 제자가 선생을 사랑한다는 설정이 영화의 기본 얼개이기 때문이다. 사실 <청춘>은 새로운 성 모럴을 제시하거나 아니면 기존의 성담론에 일격을 가하는 그런 종류의 가치전복적인 영화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적나라한 섹스 장면들은 감독이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졌다고 하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젊은 날의 초상>이나 <장미의 나날> 같은 영화들에서 묘사된 에로틱한 성애장면들이 어딘가 모르게 경색되어 있다면, <청춘>에서는 거침이 없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2000년 <청춘> 이후 오랜 기간 공백기를 가져야했고 우여곡절 끝에 6년 만인 2006년에 당시 신인이었던 지현우와 임정은을 주연으로 내세운 <사랑하니까 괜찮아>를 선보였으나 흥행에 참패했고 이후 4년간 차기작을 내놓지 못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그는 마지막 작품 실패 후 대전에 내려가 두문불출했으며, 우울증을 겪었다. 그리고 2010년 5월 25일 대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곽 감독은 다 탄 연탄 옆에서 숨진 상태였으며 노트북에 유서를 남겨놓았다. 유서에는 "일이 없어 괴롭고 힘들다"라고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향년 56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