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개, 바라보기
매개의 지형은 언제나 사이에 위치한다. 그러나 매개의 지형은 바로 그 사이라는 위치에서 빠져나와 광각을 넓힐 때 비로소 가시적인 그 무엇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020년에 결성된 이래로 지금까지 CM(Creative Mediators)의 구성원들이 나눠온 대화는 다양한 경로를 경유해온 자기 경험의 가시화에 가까웠다. 주로 시각예술계와 공연예술계에서 활동해온 우리는 장소와 방식과 시간에 대한 구애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며 대화를 지속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말하기 전에 들을 수 있었고, 듣기 전에 말할 수 있었으며, 들음과 동시에 자기 경험의 외연을 확장해 나갈 수 있었다. 구체적인 과거와 현재의 사례를 통해, 혹은 비교 가능하거나 비교 불가능한 동료의 경험을 통해 촉발된 자기 경험의 외연 확장은 결국 공동의 집필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우리가 진행한 공동의 집필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자위하는 행위, 공동의 이름을 사유화하는 행위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각자가 지내온 현장의 경험을 공유하고, 그로부터 유효한 의미의 동사를 길어내고, 각 동사에 대해 다시 한 번 장시간 대화를 나누고, 이를 정리한 동료의 글에 자유롭게 첨언하거나 다른 동사에 대한 글을 링크하며 우리가 공통적으로 경험해온 문턱으로서의 매개란 무엇이었는지 실천적으로 재고하는 행위에 가까웠다. 문턱이라는 공간은 문의 여닫음이라는 행위, 혹은 문의 안과 밖이라는 구획을 논할 때 비가시적인 조건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시선에 쉽게 포착되지 않을지라도 특정 행위나 공간 구획 자체를 가능케 하는 분명한 ‘조건’을 이룬다는 점이다. 예술현장 곳곳에서 지금까지 작동해온 수많은 매개의 양상들은 필연적이었다. 이 책은 관객의 눈에 쉽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그러나 결코 부재할 수 없는 예술의 매개 혹은 매개의 예술을 매개자들 스스로가 바라보려 했던 어느 시간들의 흔적이다. - 저자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