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투선수는 이길 거라는 확신 없이
링 위에 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게임이 끝나면 두 사람 증 한 사람은 패자다
나는 거울 속의 내게 잽을 날리는 쉐도우 복서
싸움이 끝난 뒤 포옹을 나누는 복서들처럼
내게로 와서 이름이 되어 준 상처들,
부를 때 거기 있어준 존재들과
뜨겁게 포옹을 나누고 싶다
기억으로 다녀오곤 했던 과거와
꿈으로 다녀올 수 있었던 미래가 있어
시 앞에서 늘 패자였던 나는 그래도 행복했다
사랑이여 도망쳐라
멀리 갈 수 있게 기회를 주마
달아나는 너에게 엽총을 겨누었다
그러나 방아쇠를 너무 일찍 당기지는 않겠다
호수에 가만히 앉아 있는 오리를 쏘지 않겠다
다친 사랑을 쓸데없이 괴롭히지 않겠다
상처 입은 너를 쫓아가서 붙잡지 않겠다
돌아보지 말고 달려라
냄새를 맡은 질주가 너를 쫓고 있다
오리처럼 가만히 있지 말고
도망쳐라 사랑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