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치사상의 현장은 기상관측소가 아니라 천문대라 믿는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지금껏 일기예보 같은 글을 경원한 나머지 그런 따위는 쓰지 않겠노라 다짐해왔다. 왜냐하면 우리 나라에는 패셔 스타일 식의 문화 및 학문 풍토가 범람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이 책을 준비해놓고 보니, 내가 마치 홀로 21세기를 앞서가는듯 유행의 최첨단을 거니는 것 같아 몸 둘 곳을 찾지 못할 정도다. 유행성감기 중독 증세가 드디어 나에게도 출현한 것이다.
한국의 21세기는 '참여'와 '복지'와 '통일'의 세기가 될 것입니다. 이를테면 "시민참여와 국민복지 확대로 민족통일을!" 이것이 우리들이 함께 추구해야 할 세기적 구호가 되어야 합니다....이러한 역사적 과업을 효율적이고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우리에겐 이른바 '3생정치(三생政治)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그것은 '생산의 정치''생명의 행정'그리고 '생활의 자치'를 일컫습니다.
어쨌든 유령보다 훨씬 더 유령 같은 이론과 논리에서 멀어지고자 노력했다. 이른바 '기지촌 지식인'의 굴레와 허물을 벗고자 항상 분투하고 있음을 부끄럽게 고백한다. 이런 의미에서 알제리의 민족 해방 운동가였던 프란츠 파농과 우리의 신채호 선생의 채찍 같은 목소리를 늘 가슴에 새겨두고 있다. (...)
정약용이 강진의 유배지에서 고향에 있는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죽을병에 걸린 사람을 살려내야 훌륭한 의원이라고 부르고, 공격을 받아 아슬아슬한 성을 구해내야 이름난 장수라고 일컫는다"는 구절이 엿보인다. 그렇다면 어떤 이를 탁월한 학자라 부를 수 있을까?
나의 눈은 높았으나 역량은 낮았다. 결국 나의 능력을 저울질해보지도 않고서 무턱대고 만용을 발휘한 결과 이 변변찮은 저작이 빛을 보게 되었다. 강호제현들의 자상한 채찍질을 삼가 엎드려 빈다.
이 책이 '사회과학적 수상록' 정도로 자리 매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장자는 "사람들은 누구나 유용한 것의 효용성은 잘 안다. 그러나 쓸모 없는 것들의 효용성은 잘 알지 못한다"고 일갈하였다. 나는 이 가르침을 좇아 '쓸모 없는 것'처럼 방치되어온 듯이 보이는 대상들에 우선적으로 눈길을 던지고자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