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제목이 많은 사람에게 호기심 못지 않게 거부감을 자아내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제 의도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예수에게서 보살의 정신을, 보살에게서 예수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확신을 반영한 것입니다.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결국 '사랑과 자비의 힘'임을 믿으며, 예수와 보살은 우리 모두에게 그러한 힘을 매개해주는 존재임을 밝히고자 했습니다.
전통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삶의 이상과 토대를 철학적으로 정초하려는 노력--그것이 형이상학적이든 인식론적이든--을 기울였으며, 근대와 탈근대 문화 또한 이 점에서 마찬가지다. 시대마다 철학은 삶의 궁극적 기반을 구축하고자 해왔으며, 이러한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다만 이 정초적 작업이 시대에 따라 다른 형태로 전개되었을 따름이다. 극히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전통사회에서의 정초 작업이 주로 형이상학적이었다면 근대 사회의 정초 작업은 인식론적 성격이 강하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탈근대적 정초 작업은 모든 과거의 정초 작업을 비판하고 포기하면서 불가피하게 또 다른 삶의 기반을 찾으려는 역설적 성격을 띤 정초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1984년도 출판본을 개편하고 수정, 보완하였으며 참고 문헌도 보충했다. 그러나 지눌의 선 사상과 그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큰 틀과 방향에 있어서는 큰 변화가 없었음을 밝혀 둔다. 아무쪼록 이 연구서가 아직도 우리 불교계와 학계에서 충분히 이해되지 못하고 정확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지눌의 불교 사상 이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며, 이 책의 출판을 계기로 지눌 사상의 세밀한 면까지 파고 들어가는 더 많은 전문적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