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이 잦았다. 마음 둘 데가 없었다. 걸으면서 그냥 보고 지나치기 아까운 꽃과 나무를 찍었다. 그와 함께 떠오르는 말을 몇 마디씩 적어두곤 했다.
이것을 사진이라고 찍은 것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혹은 시라고 쓴 것이냐고 묻는다면, 묵묵부답을 그 답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서툴고 어설프나마 사진적인 어떤 것, 어눌하고 소박하나마 시적인 어떤 것을 담으려고 했으며 그 둘이 어울려 시적인 어떤 것에 가깝다고 여겨질 때가 있었다고 말할 수는 있다.
누가 이거 괜찮다고, 모아봐도 좋겠다고 했다. 그 말에 으쓱해졌고, 한 이태 자주 가는 카페에 올려보기도 했다. 댓글을 기다려 읽는 재미도 있었다.
사진Photo과 시적인 글Poesie을 어울렀으니 ‘포토포에지’라고 이름 붙였다. 사진은 주로 스마트폰으로 찍었고, 오래전 카메라로 찍은 것도 몇 장 넣었다. 제목이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제목이 없는 것은 본문의 한 구절을 따서 차례에 붙였다.
시라면, 시를 좋아한다는 사람도, 심지어 시인마저 체머리를 흔드는 시절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적인 것에 대한 열망이 무너진 것 같지는 않다. 왜일까? 나는 그 답도 그 실마리도 갖고 있지 않지만, 뜻하지 않게 진척된 이 일이 또하나의 소롯길이 된다면 좋겠다. 나처럼이나 사진을 모르는 사람도, 시를 모르는 사람도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으로 찍어보고 톡탁이면서 삶을 되짚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소롯길을 서성이던 지난 몇 년이 이 책의 저자이다. 족보 없는 책을 내준 난다가 고맙다.
어둡더냐, 살아가는 것이 쓰사리더냐. 적적하지는 않겠구나, 바람 속에 살을 씻기는 것을 보니. 회한도 후회도 없는 자가 있다면, 제 가죽주머니에 바람 새는 것을 모르는 것이거나 건너야 할 강을 다 건넌 사람이겠지. 추운 산맥 쪽으로도, 흐르는 강물 쪽으로도 남루한 몸을 숨길 곳이 없더냐. 그래서 너는 저 높은 곳에 네 표정을 걸어두고 바라보고 있느냐, 가장 높은 바람 위에. 여기 춥고 어두운 입춘날 저물녘을 폐사지 한 채 걸어가는 것이 보이느냐 보느냐, 나 또한 네 표정을 높이 걸어두고 바라보고 있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