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주요 작품의 작곡 배경과 소리의 울림, 형식 등 음악 요소의 선택을 통해 쇼스타코비치가 때로는 저항하고 때로는 순응하는 모습을 담담히 담아낸다. 그 중심축은 당연히 교향곡 15편과 현악 사중주 15편이다. 「교향곡 5번」과 「교향곡 7번」은 스탈린의 탄압과 전쟁 등 음악 외부의 이야깃거리가 많은 작품으로 실제 쇼스타코비치의 의도가 풍문과는 어떻게 다른지 확인해보기 바란다. 「현악 사중주 8번」이 전체 사중주 중에서 가장 유명하지만 「현악 사중주 15번」 또한 8번과는 다른 차원에서 가슴이 미어진다. 작품 선전용 영화음악, 극음악은 경위를 설명하되 크게 비중을 두지 않는다. 대신 교향곡과 현악 사중주 못지않게 중요하지만 덜 알려진 기악 작품, 즉 현악사중주 이외의 실내악 작품, 협주곡, 오페라에도 지면을 할애한다. - 역자 후기 중에서
알찬 구성과 포괄적이며 정확한 정보 전달로
입체적 이해가 가능한 낭만시대 음악 입문서
이 책은 포괄적이면서도 정확한 정보를 제시함으로써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 클래식 입문자들뿐만 아니라 애호가들에게도 매우 유용하다. 저자는 자신의 개인적인 선호를 드러내기보다는 균형감각을 유지하려 애쓴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입장 차이가 무엇인지 알려주면서도 어느 한 쪽의 입장에 치우치지는 않는다. 슈만, 멘델스존을 가리켜 ‘고전적 낭만파’로 부른 것은 언뜻 형용 모순처럼 보이지만, 푸가를 채택하면서도 환상곡을 쓸 수 있었던 슈만과 바흐를 되살리려고 애쓰면서도 무언가song without Words를 통해 성격소품의 시대를 연 멘델스존을 생각해보면 무척 적절한 명명이다.
이런 접근 태도 또한 이 시대의 산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낭만시대 작곡가들을 서술할 때 낭만적 태도로 접근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던 시대에는 이들을 감히 다가갈 수 없는 천재로 묘사하는 책이 많았다. 로맹 롤랑의 베토벤 서술이나 제임스 휴네커의 쇼팽 서술은 작곡가의 사소한 행동이나 발언에도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고 작곡가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부딪쳤던 문제를 정당화하는 데 상당히 긴 지면을 할애한다. 하지만 20세기 말이 되면 이 천재들에게도 인간적인 고민이 있었고 시대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기에 분투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저작이 나오는데, 폴 맥가의 모차르트론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는 음악가로서 이들의 천재성을 인정하면서도 시대와 어떻게 상호작용해 나갔는지 설명하는 방식이 필요하고 맥클리리의 서술이 이에 알맞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촘촘한 구성 덕분에 입체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독립선언문,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같은 보충자료와 음악?역사?미술?건축?문학의 주요 사건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비교 연표를 통해 작곡가들이 어떤 시대를 살았는지 연결해볼 수 있고, 작곡가와 동료 음악관계자들의 증언을 읽으면 그들이 직접 전해주는 듯 생생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가장 많이 등장했던 표현으로는 ‘감정’을 꼽을 수 있다. 오늘날 같은 극단의 시대에 상처 받은 이들의 영혼을 어루만지기에 낭만시대 음악의 인기는 계속되는 것이 아닐까. 가망 없는 사랑을 애타게 부르짖는 슈베르트의 가곡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공명을 낳는다. 격렬한 드라마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리스트의 피아노곡을 들으면 일상 속에서도 극적인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이나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가 압제에 항거하는 의지의 표현임을 생각해보면 세계 곳곳에서 현재도 벌어지는 비극의 현실에 대해 조금은 위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역자 후기 중에서
바흐는 수난곡을 쓰고 헨델은 오라토리오를 쓴다. 자신이 접하는 환경 곳곳에서 신을 강조한다면 신에 의지하고 신을 대의명분으로 삼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던 바흐는 '첼로 조곡 2번 아다지오'를 통해 혼자만의 안식을 구하려는 듯하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꼰대 같은’ 답답한 사고방식에 지친 바흐는 침잠하기로 한 듯하다. 라이프치히의 고답적인 인사들이 자기를 이류라고 깎아내리든 말든, 나는 작품을 쓰겠다, 갈고닦은 기량을 온전히 쏟아내겠다는 생각 아니었을까. 이렇게 신의 시대에 개인이 등장했다.
작품을 통해 기성 질서에 대해 저항하기도 하고, 자신이 거인의 어깨 위에 있음을 자각하며 전통을 반추하여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모습은 시대의 시작과 끝을 가늠하는 기준이라 할 것이다. 몬테베르디는 당대 주류 음악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양식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는 예전 시대의 기준으로 자신의 음악을 삼류 취급하는 비평가를 조롱하기도 했다. 이에 비해 바로크의 마지막 거장으로 등장하는 바흐는 저자의 말대로 ‘유럽에서 성행하던 각기 다른 음악 양식을 흡수하고 완전한 유기체로 통합’하여 당대 음악의 청각적 지도를 후대에 남겨주었다.
'디도의 탄식'이라는 애통한 사랑가를 그냥 넘기기는 힘들다. 바로크 변주곡의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곡이기도 하지만, 그런 배경을 전혀 모르고 듣더라도 그 슬픔에 금세 동화될 것이다. 그리고 시대를 뛰어넘어 감상자의 마음을 파고드는 예술의 위대함 또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바로크시대라는 낯선 시공간에서도 현재의 우리와 감성적으로 비슷한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작품을 통해 가슴으로 깨닫게 된다.
그리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바로크 작곡가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두루 살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잘 모른다는 이유로 무심코 넘겼던 작곡가들도 자신의 음악세계를 확립하고 펼쳐나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쉬츠 같은 경우 음악이론서의 예시곡 정도에나 나오는 작곡가로 취급했는데, 그가 어떤 인생경로를 밟았는지 알고 나서 접하니 공부할 때도 생생한 기분이 든다. 바흐에 이르는 감상과 공부라는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듯하다. 바흐가 통합해야 할 전통을 확립한 이들은 누구이고, 그들을 계승해나간 이들은 당대의 기준으로 봤을 때 새로운 시도를 어떻게 더했는지 알 수 있다. 바로크 음악이 부담스러웠던 독자 분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그 부담을 내려놓는 기회가 되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