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묶는 동안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고향에서 사과 농사를 짓던 서른셋 형이 사고로 세상을 떴을 때
어머니는 매일 저녁 아들이 지냈던 방에 불을 밝혀놓았다.
2년 넘게 단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아버지가 병에 걸려 몸져누웠을 때
어머니는 매끼 새 밥을 지어 올렸다.
채 몇숟가락 뜨지 못해 밥이 그대로 남아 있어도
어머니는 병든 남편을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삼시 세끼 새 밥을 지어 올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죄가 되고 한(恨)이 된다고 했다.
나도 시를 이렇게 써야 한다
2019년 7월
구례 운조루에 들렀다. 구름 속, 새처럼 숨어 사는 집. 구경 삼아 곳간채에 들르니 통나무 속을 파내 만든 낡은 뒤주가 보인다. 아래쪽 구멍 마개에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귀가 있어 뜻을 구한다. "다른 사람도 이 마개를 풀 수 있다."
연기가 오르지 않게 굴뚝을 낮췄다는 이 집의 속 깊은 옛 주인을 생각한다. 배고픈 백성들이 아무 때나 와서 쌀을 퍼가고 가을에 추수를 하면 다시 되돌려놓았던 마음의 뒤주. 주인은 이 녘까지 쌀을 나누고 어느 농부의 갓 말린 볍씨를 소복이 품에 채우고 있다.
내내 나만 풀 수 있었던 뒤주, 밑바닥을 들킬까 봐 나 혼자 풀려고 했던 뒤주통을 천천히 끌고 오는 길, 내 몸 가만히 '他人能解'를 새긴다. 용기를 내어 낡은 뒤주 같은 첫 시집을 냈다. 무섭고, 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