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가기 전에 필요 물품 목록을 만들어 며칠에 걸쳐 가방을 싸요. 이동이 용이한 지역인지를 파악하고 식량을 꼭 가져가야 하는 지역은 여분의 가방에 식량과 옷가지를 담아 가고, 굶더라도 짐을 최소화해야 할 상황이면 가장 콤팩트하게 가방을 싸요. 여러 개의 가방을 챙겨 가지만 실제 촬영에서는 망원 렌즈 하나 정도를 넣는 작은 가방만 가지고 다니고, 나머지 가방은 숙소나 차에 둬요. 보통 3대의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다니고, 현지 가이드와 동행하면서 차량은 렌트해요. 차를 기준으로 몇 백 미터 반경 안에서만 걸어서 이동하는데 위험 발생 시 차로 달려가기 위해서죠. 때로는 상황에 맞는 변신과 위장이 필요해요. 전쟁터나 오지 촬영의 경우는 카메라를 겉으로 메고 신분을 드러내 보도자로서의 신뢰성을 심어 주는가 하면, 보통 어두운 면을 다루는 밀착 취재에 있어서는 사람들의 거부반응을 피하기 위해 여행객인 척, 자연스럽게 기념사진을 찍는 듯한 위장을 하죠.
연화지정(蓮花之井)을 찾아서
잊혀진 왕국 캄은 동 티베트를 말한다. 외국인의 접근이 까다로운 이 지역은 쓰촨성 서쪽의 깐쯔현으로, 많은 불학원들이 모여있다. 4천 미터 고지의 넓은 구릉에 위치한 ‘아추가르(Achuk gar)불학원’은 그중에서도 규모가 크고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아 신비가 더한 곳이다. 50년 전 아추가르 큰스님과 10여 명의 제자가 이주해 불학원을 이룬 것이 그 시작이었다.
구릉 높은 곳에 올라서면, 끝없이 펼쳐진 허허벌판에 긴 강을 따라서 아름다운 사원과 스님들의 숙소가 점점이 들어선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붉은 가사를 입고 가부좌를 튼 채 참선에 잠긴 수천 명의 스님들과 푸른 잔디가 대비를 이루며 비현실적인 풍경을 이룬다. 하늘은 매순간 시시각각 변모하고, 스님들의 깊은 기원이 스민 공기는 차고도 맑다. 설교소리가 바람에 섞여 귓전을 스친다.
대형 타루초의 그늘에 앉는다. 산다는 일. 과중한 도시의 삶속에서 미처 자신이 누구인지 물을 겨를도 없이 살아가는 속인들의 삶의 속도가 이곳에서는 무상하기만 하다. 황, 적, 녹, 황, 백 오색의 타루초. 그 상징인 우주의 다섯 가지 원소 물, 하늘, 불, 바람, 땅 중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며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 답을 얻기 위해 이들은 참선을 하고 자기보다 몇 배 큰 등짐을 울러 멘다. 손수 옮긴 널빤지로 한 몸 뉘울 움막을 짓고 밤새 언 물로 몸을 씻는다. 거기에서 종교성을 넘어선 어떤 숭고를 본다.
이곳에는 약 1만 명의 비구와 비구니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는 학승들이 있다. 그 중 약 7천명이 비구니이며 절반이 젊은 비구니이다. 가족이 모두 나와 있거나 아이를 가진 어머니도 있다. 대부분이 장족이지만 요즘 상당수의 한족들이 몰려드는 추세이다.
매일 낮에는 각자 스승의 설법을 듣고, 오전 오후 각 2시간씩 참선을 행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한번 씩 주변의 신도들이 다 같이 모여 이루어지는 대법회가 열린다. 이 책의 사진들은 10월에서 12월까지 매서운 추위 속에 움막을 짓고 이루어지는 100일 참선과, 그 끝에 열리는 3월 봄맞이 대법회의 장면이다. 보통 10일 정도 열리는데 비가 오나 눈이오나 큰스님의 말씀을 듣고 깨우침을 얻기 위해 허허벌판에 앉아 오전, 오후 각 4시간씩 강행군을 한다.
새하얀 들판에 새벽바람을 타고 모여드는 수만 명의 행렬... 이들은 왜 이 어려운 삶을 받아들이고 자신 속으로 향하려 하는가? 붉은 연꽃처럼 추위에 얼어터진 볼을 하고 이들은 무엇을 열망하는가? 아마도 언젠가 우리의 영혼의 우물이 마를 때, 그들이 불쑥 연꽃 우물을 내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