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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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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소설로 읽는 한국환경생태사 1 : 산업화 이전 편>

메리골드

아주 오랫동안 소설로부터 멀리 떠나 있었다. 애증의 연인을 냉정하게 떠나보내듯 돌아섰다. 멀리 떠나 있어도 한동안은 잘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돌아와 순한 자세로 책상 앞에 앉아 소설을 새롭게 고민했다. 그동안 발표한 작품을 모아 두 번째 창작집을 내기까지, 참으로 긴 시간이 흘렀다. ‘작가의 말’을 어떻게 써야 하나. 자크 프레베르의 시 「장례식장에 가는 두 마리 달팽이들」을 떠올린다. 죽은 나뭇잎의 장례식에/두 마리 달팽이가 조문하러 길을 떠난다네/(…) 그들이 길 떠난 시간은/어느 맑은 가을날 저녁이었네/ 그런데 슬프게도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봄이 되었다네 뜬금없이 불러온, 시의 내용을 풀어쓰면 이렇다. 두 마리 달팽이가 가을에 조문을 떠났는데 겨울도 지나고 나뭇잎이 부활한 봄이 되었다. 너무 느린 탓이었다. 실망에 빠진 달팽이들에게 햇님이 말했다. 괜찮다면 여기서 맥주 한 잔 드시고 가시지요, 파리로 가는 버스를 타고 이곳저곳 구경도 하세요. 대신, 침울한 상복은 벗으시고 당신들 삶의 색깔을 다시 찾으세요, 라고. 달팽이 두 마리는 숲의 모든 동물·식물들과 어울리며 놀았다. 때는 벌써 여름! 그들은 건배를 하며 아름다운 밤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나서 달팽이 두 마리는/ 집으로 돌아갔네/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들은 정말 감동했어/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들은 정말 행복했어/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인지/ 두 마리 달팽이는 조금 비틀비틀/ 하지만 하늘 높은 곳에서/ 달님이 그들을 보살펴주었네 이토록 길게 시를 인용해야만 했다. 프레베르, 그의 시에는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람살이의 따뜻함이 들어 있다. 달팽이들의 느린 행로를 따라가면서, 나는 위로를 받으며 경이로움을 느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하게 되는, 문학이란 이런 것. 그러니 어찌 소설을 쓰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목말랐던 시절 소설이 써지지 않아 자주 넘어질 때 ‘좋은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찾도록 이끌어 주신, 채희윤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올린다. 얼마나 다행인가. 모든 일에 늦된 내가 이제라도 조금 깨닫게 되었으니! 오랫동안 세상을, 사람을, 소설을 앓다가 ‘어떤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아름다움의 어원은 ‘앓음다움’. 앓고 난 사람이 보여주는 인간다움이라는 것. 내게 인간다움을 가르쳐 준 소설 쓰기를 사랑한다. 무력한 나의 꿈을 채근해 결국 출간하도록 도와준 다인숲 임성규 선생님, 첫 창작집 『물속의 정원사』를 기억하고 기꺼이 해설을 맡아주신 김진수 선생님, 그리고 ‘하늘 높은 곳’ ‘달님’처럼 보살피며 내 편이 되어 주었던 사람들에게 감사드린다. 담담하게, 『메리골드』의 첫 장을 펼치게 될 독자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들 모두,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는 ‘나의 힘’이 되어 줄 것을 믿는다.

물속의 정원사

소설을 왜 쓰느냐고 묻는다면 말하고 싶다. 그 소설이라는 '집'에서만이 내 영혼과 육체가 안심할 수 있다고. 영혼이 말하는 것을 들어줄 수 있는 귀 밝은 사람들을 만난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친구가 말했다. 소백산 비로봉에 올라서서 나무들의 지붕인 하늘을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고. 비로봉 나무들의 하늘을 향한 염원을 자신의 몸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나무들의 영혼과 소통한 것이다. 나는 염원한다. 지상에 뿌리를 튼실히 내리고 머리는 하늘로 향하면서 이 세상과 소통하리라.

붉은 모란 주머니

어느 겨울, 우연히 『미암일기』를 발견했다. 희열을 느꼈다. 눈 내리는 밤, 틈틈이 미암 선생의 일기를 읽는 일은 새로운 충격이 었다. 담양 대덕을 가끔 찾았다. 연계정 뒤로는 대숲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 아래 맑은 시내가 흐르고, 초록 언덕에는 노랑 상사화가 드문드문 피어 아련했다. 그 풍경을 보고 떠올린 첫 구상의 주된 인물은 송덕봉이었다. 담양송순문학상에 부끄러운 이름을 올렸을 때, 방굿덕을 살리면 더욱 좋겠다는 소설가 문순태 선생님의 귀 한 말씀이 숙제처럼 오래 남았다.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다. 다시 담양을 찾게 되었다. 미암 선생과 덕봉 선생의 쌍봉에는 청명한 하늘 아래 빛나는 햇살이 따뜻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아래, 소나무 그늘이 드리 워진 가난한 무덤이 눈에 들어왔다. 풀이 성글게 돋아있어 쓸쓸 했다. 평생, 사랑을 믿었던 여성 방씨의 묘지였다. 해남읍 해리, 바다가 보였던 산마을을 물어물어 찾았다. 높고 푸른 곳 금강산. 미암바위는 눈썹을 가늘게 뜨고 자애로운 표정 으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했다. 그곳에서 바다 안개처럼 멀고 아득한 사랑을 했던 굿덕이 말 한다. 기어이 영감마님의 곁에 잠들 것입니다. 이것만은 이룰 수 있 겠지요. 기필코 되겠지요. 붉은 모란 방굿덕이 치열하게 살았던 건, 다만 욕망이었을까. 그녀의 행복은 순간순간 꿈을 이루는 과정에 있었다. 불가능은 관념이었을 뿐이다. 함께, 문학을 살고 있는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지석영 평전

지석영은 권력과 부를 위해 친일을 지향하지는 않았으나, 의학자로서 친일 세력과 함께 그 시대를 호흡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은 결코 평범할 수 없었던 생을, 개화를 꿈꾼 근대인으로 살면서 자신의 길을 갔을 뿐이다. 그러나 그 생애는 친일파로 부정당했고 현대사(現代史)가 평가한 역사의 페이지 속에 묻혀 있다. 암울한 시대 한일합방 전까지 독립협회 활동과 각종 사회단체의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자강독립에 힘을 쏟았던 선생의 삶을 돌이켜볼 때, 명명백백한 친일파라고 규정지어버린 것은 몹시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 지석영 선생의 다양했던 삶의 궤적과 사상을 재평가해야 할 때가 되었다. 개화기에 가장 무섭고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천연두였고, 천연두로 인한 죽음에서 그 어떤 누구도 자유롭지 못했다. 백신이 개발되었다고 해도 국가의 제도가 받침이 되지 않으면 죄인이 되어버린 예가 허다했다. 임오군란 이전부터 왕실이 인정한 ‘종두소’를 열어 우두법을 시행했고, 숱한 역경에도 불구하고 우두법 보급을 국가 차원으로 끌어 올렸던 단 한 사람 지석영. ‘천연두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해 일신의 안녕을 돌보지 않았던 선생을 더욱 심층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들여다보아야 한다. 개화사상가이며 근대과학자 지석영은 망국의 시대에 영광과 숱한 오욕을 넘나들면서 의학자와 국문연구가의 길을 걸었다. 이 결론을 얻기까지 오랜 숙고의 시간을 거쳤다. - 김현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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