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에 남아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걸듯이
언젠가 나 같은 어른들에게 말 거는 동시를 써 보고 싶었다.
그러다 마흔이 넘어 하나 둘 쓰기 시작했다.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가 거추장스러워 주머니에 넣고 다닌 지 삼십 년이 더 된다.
쉰일곱 살 때까지 핸드폰 없이 살았다.
쉰여덟 되던 해 여름(2020년), ‘저 선배 그냥 둬선 안 되겠다’ 싶었던지
시 쓰는 후배가 택배로 폰을 보내왔다.
건빵바지 주머니에 쏙 넣을 수 있고,
손아귀에 딱 들어오는 폴더폰이어서 좋았다.
그걸로 난생처음 사진이란 걸 찍기 시작했다.
2023년 1월
이번 시집은
내 시의 역사에서 보자면
이제 막 사춘기를 벗어나는 지점쯤 존재할 것이다.
감히 말하건대
내 시의 광맥은 거의 무한에 가깝다.
무한을 쓰는 삶,
그게 이번 生이다.
육체의 쓸쓸함과 영혼의 적요함,
7번 국도의 감수성,
겸허한 몸과 마음의 어떤 인류들,
달과 별의 고적함,
그런 것들에 이 책을 준다.
세상을 능가하는 시를 써야 하리.
-1999년 초가을, 평촌에서
어떨 땐 이빨 사이에 낀 음식물을 제거하는 것보다
더 중한 일이 인생에 없어 보인다.
내가 사는 마을에 실력 있고 과잉 진료 안 하는 치과의사가
있느냐 없느냐가 삶의 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신발만큼 가까이 있는 구원.
화장실만큼 가까이 있는 지옥.
작은 풀들의 잔잔한 흔들림,
작은 새 몇 마리의 여린 지저귐,
네 다리 쭉 뻗고 낮잠 든 개의 한낮,
시간을 데려오고 데려가는 나뭇잎의 사계가 가져다주는
조용한 평화와 맞바꿀 만한 위력이 삶에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2022년 3월
그 사람처럼
이 삶의 여름은 지나갔다.
무한정 살 수 없는 삶을 이 시간에 세워 놓고
지나가는 가을 오후의 내 그림자를 재본다.
여전히 삶은 코앞에 있고
비애와 분노는 발바닥 밑에 있다.
그런가 하면
이 세계의 아름다움도 피부에 낭자하다.
다 사랑할 수는 없으리.
다 노래할 수는 없으리.
나는 시를 멈춘 적이 없었다.
시는 나의 언어였고 언어는 나의 일이었다.
2023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