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기서 하려는 작업은 임상의학이 어떤 의학적 경험 위에서 가능할 수 있었는지 비판적으로 추적해본 사례 분석이다. 하나의 의학적 시선이 그 이전 시대 혹은 그 이후의 의학적 시선과 상충된다거나, 어느 것이 좀더 발전된 형태의 지식이었다고 단정짓는 게 이 책의 목적은 아니다. 내 진정한 의도는 빼곡히 들어찬, 그리하여 그것이 어떤 존재론적인 기반을 갖고 있는지 한 번도 의심해보지 못한 담론 구성의 골격 사이로 임상의학이 어떻게 자신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는지를 역사적으로 탐구해보자는 것이다.
언어적 표상과 대상의 관계 속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사물 위에 혹은 사물을 넘어서 인간이 진정으로 무엇을 말하려고 했느냐는 발화 주체의 의도를 찾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사물을 포착하려는 순간부터 그 대상을 마음대로 주무르려고 하는 언어의 음흉한 계략, 즉 끊임없이 새로운 담론 속으로 끌어들여 대상의 모습을 변질시키려 하는 언어적 횡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