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9일 : 73호
가능한 만큼, 나는 뒤쪽에서 헤엄칠 작정이다.
멸망이라는 단어가 멀게 느껴지지 않는, 폭염으로 절절 끓는 여름입니다. <소설 보다 : 여름 2023> 앤솔러지가 출간되었을 때 공현진의 이 소설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요, 이후 이 작품으로 작가는 젊은작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을 표제작으로 한 공현진의 첫 소설집이 드디어 출간되었습니다.
'희주'와 '주호'는 일하는 곳에서 다른 이의 죽음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밀려난 이들은 수영 강습 초급반에서 만났습니다. 이들은 초급반에서도 어쩐지 걸리적거리는 존재들, "방해는 하지 마셔야죠. 진행이 안 되잖아요!"(59쪽) 하고 혼나는 존재들입니다. 철제 구조물인 에펠탑이 녹을 지경이라는 뉴스가 나올 정도의 폭염입니다. 해수면은 높아지고 더 많은 땅이 물에 잠기고, 언젠가 희주의 상상처럼 세상은 물에 잠겨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뒷줄에 선 사람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그들을 버리고 가지 않는 이 소설에 마음이 열리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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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이라는 단어가 멀게 느껴지지 않는, 폭염으로 절절 끓는 여름입니다. <소설 보다 : 여름 2023> 앤솔러지가 출간되었을 때 공현진의 이 소설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요, 이후 이 작품으로 작가는 젊은작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을 표제작으로 한 공현진의 첫 소설집이 드디어 출간되었습니다.
'희주'와 '주호'는 일하는 곳에서 다른 이의 죽음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밀려난 이들은 수영 강습 초급반에서 만났습니다. 이들은 초급반에서도 어쩐지 걸리적거리는 존재들, "방해는 하지 마셔야죠. 진행이 안 되잖아요!"(59쪽) 하고 혼나는 존재들입니다. 철제 구조물인 에펠탑이 녹을 지경이라는 뉴스가 나올 정도의 폭염입니다. 해수면은 높아지고 더 많은 땅이 물에 잠기고, 언젠가 희주의 상상처럼 세상은 물에 잠겨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뒷줄에 선 사람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그들을 버리고 가지 않는 이 소설에 마음이 열리는 까닭입니다.
저도 꾸준히 수영장에 가고 있는데요, 7월부터 새로 오셔서 말을 섞게 된 어르신 회원이 있습니다. 허리가 아파 재활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라 딸이 자유수영 회원권을 끊어줬는데 막상 걷기를 하려니 다른 사람 속도에 방해가 되어 미안해서 걷기를 하지 못한다는 사연을 얘기해주셨습니다. 그냥 길 막으시라고 할거 해야쥬 하고 저는 먼저 나왔는데요, 어제 킥판 품고 레인 걷던 어르신이 저 끝에서 손 들어서 가라고 인사해주시는데 어쩐지 이 소설 생각도 나고 마음이 좀 그랬습니다. 저는 누가 막으면 막히는 대로 기다렸다 가고 싶습니다... 그게 공현진의 소설을 읽으며 제가 취하고 싶은 태도입니다.
- 알라딘 한국소설/시/희곡 MD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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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쪽 : 남들은 어떻게 이런 균형을 어렵지 않게 잡을까. 희주는 몸에 힘을 너무 주지 않아서 혼이 났다가, 곧 바로 힘을 너무 많이 주어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알라딘 :
<가능하면 낯선 방향으로>는 첫사랑, 낯익은 동네, 그리고 한 시절의 추억과 상처가 깃든 장소로 돌아가는 여정에 관한 앤솔러지입니다. 올 여름 작가들이 한번쯤 가보고 싶은 낯선 곳이 있을까요? 소설에서 묘사된 전주, 인천 등의 실재하는 장소여도 좋고 추상적인 곳이어도 좋습니다.
김이설 :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곳, 혹은 아무도 안 만나는 곳. 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곳.
한적한 바닷가 마을의 가장 외진 집 한 채에 숨거나 깊은 산 속에 자리한 절집 요사채에 납작 엎드려 있거나. 혹은 아무 말도 통하지 않는 이국이거나 행성이거나 차원. 그것이 현재의 내가 가장 가고 싶은 낯선 방향. 지금은 너무 바쁘고, 여기는 시끄러운데다, 나에게 익숙하고 친숙한 것들은 모두 온 마음을 다해야만 하는 일들. 그러니 안그래도 뜨거운 이 여름만큼은 조용히 사라지고 싶은 것. 당신들로부터, 그리고 나로부터. 그렇다면 내 이름만 불리지 않는 곳이라면 거기는 모두 낯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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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
<가능하면 낯선 방향으로>는 첫사랑, 낯익은 동네, 그리고 한 시절의 추억과 상처가 깃든 장소로 돌아가는 여정에 관한 앤솔러지입니다. 올 여름 작가들이 한번쯤 가보고 싶은 낯선 곳이 있을까요? 소설에서 묘사된 전주, 인천 등의 실재하는 장소여도 좋고 추상적인 곳이어도 좋습니다.
김이설 :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곳, 혹은 아무도 안 만나는 곳. 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곳.
한적한 바닷가 마을의 가장 외진 집 한 채에 숨거나 깊은 산 속에 자리한 절집 요사채에 납작 엎드려 있거나. 혹은 아무 말도 통하지 않는 이국이거나 행성이거나 차원. 그것이 현재의 내가 가장 가고 싶은 낯선 방향. 지금은 너무 바쁘고, 여기는 시끄러운데다, 나에게 익숙하고 친숙한 것들은 모두 온 마음을 다해야만 하는 일들. 그러니 안그래도 뜨거운 이 여름만큼은 조용히 사라지고 싶은 것. 당신들로부터, 그리고 나로부터. 그렇다면 내 이름만 불리지 않는 곳이라면 거기는 모두 낯선 곳.
이주혜 :
캐나다 노바스코샤 그레이트빌리지의 부머 하우스. 지난겨울 엘리자베스 비숍의 시 전집을 번역하면서 비숍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연달아 잃고 잠시 머물렀던 노바스코샤의 외가를 가끔 떠올렸다. 이곳을 배경으로 쓴 <세스티나>에서 어린 여자아이는 할머니와 함께 식탁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린다. 9월의 비는 집 위로 떨어지고 찻주전자의 눈물은 검정 난로 위에서 미친 듯이 춤춘다. 작은 달들은 눈물처럼 아이가 그린 꽃밭 위로 떨어진다. 바깥이 전쟁으로 어지러울 때 어린 소녀는 참혹한 시간 속에서 눈물을 심었다. 거기 찾아가 어린 비숍의 맞은편에 앉고 싶다. 차를 한 잔 마시고 잠시 눈을 마주치다가 헤어지기 직전에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심은 눈물들이 무성하게 잎을 틔워 아름다운 시로 자랐다고. 나는 그 눈물의 열매로부터 깊은 위로를 받았다고.
정선임 :
떠난다는 생각만으로 행복해져서 이런 질문 너무 좋아요. 어디부터 갈까요? 우선 오랜 버킷 리스트 중 하나가 있는데 모니카 마론의 『슬픈 짐승』에 나오는 베를린 자연사 박물관에 가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속에 파묻혀 브라키오사우루스의 뼈를 바라보고 싶어요. 또 제주를 좋아해서 해마다 가는데 한 번도 가지 않은 이름 모를 섬에 가고 싶네요. 한 시간이면 섬 전체를 산책할 만한 크기에 사방이 물이고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사라진 곳. 저는 호퍼의 그림처럼 방문을 열면 바로 닿을 듯 바다가 옆에 있는 방을 구할 거예요. 널찍한 책상 하나, 푹신한 침대만 들여놓고 그 풍경이 지겨워질 때까지 보고 싶어요. 그러나 현실은 그럴 시간이 생긴다면 병원 순례로 몸 상태를 점검한 뒤 밀린 원고를 쓰고 있을 테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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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좀비 사태가 벌어졌다면? 사내 최고 빌런들과 함께 이 위기를 극복해나가야 한다면? 한국문학 애호가 선생님들은 이런 상황에 놓이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도 회사원이다보니 어떤 인물들과는 굳이 힘을 합쳐 이 위기를 이겨내기엔 곤혹스럽고 데면데면해서 차라리 좀비 되는 게 낫다 싶기도 한데요... 이 한 줄을 밀어붙여 완성한 좀비 오피스 탈출기의 설정이 재미있어 소개합니다.
'라떼' 박 부장과 '제가요?' 최 사원 사이에 끼인 김 대리는 언제나 그랬듯 오늘도 퇴근을 꿈꿀 따름입니다. 문제는 퇴근하려면 좀비를 뚫어야 한다는 것인데요. 힘을 합쳐 이 사태에 대처해야 하는 부장은 아픈 척만 하고 사원은 없는 게 나은 세계관 속에서 '너 같이 이기주의적인 놈들 때문에 조직이 망가지는 거야!'(156쪽) 같은 말을 하며 부장이 내 계획에 사사건건 간섭이면 좀비가 더 무서운지 조직이 더 무서운지 깊은 생각에 빠질 것도 같습니다. 아포칼립스 좀비 서바이벌물과 블랙코미디 오피스물을 결합한 황수빈의 소설로 12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한겨레출판에서 소설 앤솔러지 《서른 번의 힌트》를 출간했어요. 한겨레문학상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심윤경, 최진영, 장강명, 강화길, 박서련 등 역대 수상자 20인이 참여했습니다. 각자 당선작을 모티프로 한층 첨예해진 관점과 형식의 이야기들을 풀어냈는데요. 그렇기에 《서른 번의 힌트》는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을 따라 읽어온 독자들에겐 친숙한 이야기가 확장되면서 새로워지는 경험을 선사합니다. 앞으로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을 접할 독자들에겐 흥미로운 이야기들의 물꼬를 터주는 긴요한 안내서 역할을 하고요. 한겨레문학상 30주년을 기념하고 수록작들을 연결하기 위해 작품마다 ‘30’이라는 키워드를 심어두기도 했으니 이를 찾아 읽는 재미도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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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에서 소설 앤솔러지 《서른 번의 힌트》를 출간했어요. 한겨레문학상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심윤경, 최진영, 장강명, 강화길, 박서련 등 역대 수상자 20인이 참여했습니다. 각자 당선작을 모티프로 한층 첨예해진 관점과 형식의 이야기들을 풀어냈는데요. 그렇기에 《서른 번의 힌트》는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을 따라 읽어온 독자들에겐 친숙한 이야기가 확장되면서 새로워지는 경험을 선사합니다. 앞으로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을 접할 독자들에겐 흥미로운 이야기들의 물꼬를 터주는 긴요한 안내서 역할을 하고요. 한겨레문학상 30주년을 기념하고 수록작들을 연결하기 위해 작품마다 ‘30’이라는 키워드를 심어두기도 했으니 이를 찾아 읽는 재미도 있을 거예요.
《서른 번의 힌트》는 올해 서울국제도서전 ‘여름, 첫 책’에 선정되어 도서전에 오신 분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현장에서 근무한 마케터의 말로는 책이 부족하여 판매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해요. 뜻깊은 기획과 참신한 디자인을 알아봐주신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겨레문학상은 《서른 번의 힌트》를 통해 지난 30년간의 문학적 성취를 작가, 독자와 함께 기억하고 새뜻한 발걸음을 내딛고자 합니다.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도 곧 출간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려요.
- 편집자 박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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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소재로 한 장르소설 두 권을 함께 소개해봅니다. 문녹주의 첫 소설집 <지속 가능한 사랑>에 수록된 작품 <금서의 계승자>에서 우리가 아는 형태의 전통적 종이책은 나무가 사라지면서 사라진 상태입니다. 전주에 세워진 새로운 '출판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은 책의 내용을 암기하는 인간 책, 암기 노예입니다.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가작을 수상한 작가 김필산은 수상작인 <책이 된 남자>를 확장한 연작소설 <엔트로피아>를 첫 책으로 내놓습니다. 동로마제국, 거란, 미래 서울을 연결하는 것은 선지자의 기억입니다. 뇌를 얇게 썰어 금속 침으로 그 뇌의 생각을 측정해 종이에 옮기면 한 인간의 육신은 3,000여 장 분량의 책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