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5일 : 65호

라인G1

이 책이 지금

언제 누구에게 찾아오든 존중받아야 마땅한 마음에 관해

여름이면 들춰보는, 여름 소나기 같은 소설집 <여름의 빌라>(2020) 백수린이 전전반측 잠 못 이루는 봄밤이면 읽고 싶은 소설집을 엮었습니다. <봄밤의 모든 것>이라는 제목의 소설집에 2020년부터 2024년까지 4년 동안 작가가 흐르며 변화한 과정이 기록된 '일기장' 같은, 비밀을 품고 있을 일곱 편의 소설이 실렸습니다. 눈 내리는 풍경이 자주 등장하는 소설들을 감싸며 봄밤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을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삶이, 이 세계가, 겨울의 한복판이라도 우리는 봄을 기다리기로 선택할 수 있다고. 봄이 온다고 믿기로 선택할 수 있다고. 그런 마음으로 이 소설들을 썼다.' (작가의 말)

"우리가 몇 번의 봄을 더 함께 볼 수 있을까?" (<봄밤의 우리> 95쪽)

화창한 봄밤에 나이들고 아픈 개를 품에 안은 채 걸으면서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개는 사흘 뒤 숨을 거둡니다. 10년을 함께 산 개가 떠난 후 그에게 이제 봄은 같은 봄이 아닙니다. 그녀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건 이 상실이 자기 자신만의 것이라는 것, 개를 돌보기 위해 휴직을 고려했을 정도로 그에게 이 상실이 세상의 전부라는 걸 자신 말고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입니다. 뜻밖에도 그를 살린 건 한철 알고 지낸 일본인 친구 유타의 말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은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슬픔은 극복이 안되지."라는 말에 기대 그는 다음 봄밤의 향기를 향해 다시 나아갈 것입니다. + 더 보기

104쪽 : 그러다 그녀는 아주 천천히, 그 밤 보았던 달의 아름다움을 아는 건 그녀와 사랑하는 개뿐이라는 사실을 가까스로 떠올렸다. 둘이서 함께한 그 순간은 오직 둘만의 것이며, 그 무엇도 그들이 공유했던 서로의 온기와 감촉, 그 봄밤의 밀도와 향기만큼은 빼앗아 갈 수 없으리란 사실을. 그것이 그녀에게 아주 조그만 위안이 되었다.

라인p1

작가는 지금 _3문 3답

Q : 백색왜성을 너무 많이 먹어 충치가 생긴 염라의 임플란트 치아를 구하기 위해 '16나한'이 치과에서 폐기용 사랑니를 가져가려다 치위생사 '시린'과 마주치며 <낭만 사랑니>가 시작됩니다. 청예 작가는 치과 방문을 최대한 미루시는 편인지, 가급적 바로 방문하는 편인지 궁금합니다.

A : 저는 조금만 아파도 치과만큼은 즉시! 방문합니다. 이 책 출간 직전에도 반찬을 씹다 시큰한 느낌이 들자마자 다음 날 호들갑을 떨면서 치과에 갔을 정도지요. 가족력 때문입니다. 제 부친께서 치아가 좋지 않아, 젊을 적 이미 여러 번 임플란트를 하셨습니다. 흰 손수건을 입에 무는데, 그 수건이 피로 새빨갛게 젖는 걸 본 적도 있어서 저에겐 공포가 있습니다. + 더 보기

라인y1

한국문학 MD는 지금 스마일

좋다... 그런데 왜 좋을까? 골똘히 생각해보게 되는 소설이 있습니다. 윤성희 작가의 슴슴한 소설이 그렇습니다. 대 도파민의 시대와는 다른 자기만의 속도로 느리게 걷는 소설 속에서 사람들은 밥을 해먹고, 실없는 소리를 하며 일상을 삽니다. 그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실직, 부모의 이별, 나의 죽음 같은 재난에 걸려 넘어집니다. 윤성희의 소설이 참 좋은 것은 이 갑작스러운 낙차조차 긴 문단속에서 줄줄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처럼요.

엘릭시르 출판사에서 만드신 2025 연말 달력을 요즘 가끔 들여다보고 있는데요, 미스터리와 관련있는 작가의 기념일이라든지 소설 속 사건이 기념일의 형태로 달력에 적혀있습니다. 1958년 2월 4일엔 히가시노 게이고가 출생했고, 1995년 2월 4일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사망했다는 정보가 달력에 나란히 놓여있어 누군가의 생일은 누군가의 기일이 되기도 하는구나, 참 공교롭구나 했습니다. 윤성희의 이번 소설집에서 인물들은 자주 생일과 기일을 마주합니다. 기념일을 맞아 작은 파티를 하는 순간 인물의 주변에서 시간이 느려집니다. 평행봉 선수가 되는 상상을 하며 잠시 눈을 감고 긴장을 추스르는 인물을 상상해봅니다. 그 순간 참 좋다... 하는 말이 저절로 흐르며, 윤성희의 소설처럼 잠시 삶이 느리게 흘러갑니다.

라인y1

출판사는 지금 : 다산책방

“그 작품이 오늘날 복간을 필요로 할 만큼 문학적인 메리트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이병주, 『행복어 사전』)
사전에서 ‘복간(復刊)’을 검색하면 나오는 예문입니다. 복간의 사전적 의미는 간행을 중지하거나 폐지하고 있던 출판물을 다시 간행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위의 예문을 보면 단어에 담긴 깊은 뜻이 보이지요. 그렇습니다. 복간이란 단순히 다시 인쇄하는 것이 아니라, 책의 현재적인 가치를 찾아 다시금 독자에게 소개하는 작업인 셈입니다.

최근 전경린 작가님의 장편소설 『자기만의 집』을 복간했습니다. 이 책의 “문학적인 메리트”는 명확했습니다. 2007년, 이 책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제목은 『엄마의 집』이었어요. 그런데 다시 보니 '엄마' 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더라고요. 등장인물 모두가 현실의 우리들처럼 저마다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이 애틋하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새 옷을 입혀주듯 『자기만의 집』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책이 출간된 직후 작가님께서 이 책을 기획한 팀장님께 메일을 주셨습니다. 책이 나왔으니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다는 내용이었죠. 작가님은 이 책을 여느 개정판처럼 생각했던 터라 출판사의 이런저런 요청과 제안이 처음엔 조금 부담스러웠다고 해요. 하지만 복간의 의미를 찾아보고서 이내 ‘심쿵’ 했고, 편집자와 출판사의 진심을 알게 되었다는 작가님다운 사려 깊고 다정한 문장의 메일이었습니다.

+ 더 보기

라인y2

제30회 문학동네소설상

1회 수상작 은희경의 <새의 선물>, 10회 수상작 천명관의 <고래>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문학동네소설상의 30회 수상작가인 소설가 박선우의 작품을 나란히 놓아봅니다. <어둠 뚫기>는 삼십대 남성 인물이 삶에서 겪는 여러 부침과 더불어 엄마와의 끈끈한 애증 관계 등을 은근한 온도의 문장들로 펼쳐내는 소설이라고 합니다. 기어이 어둠을 뚫고 삶을 향해 나아가는 인물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은 2022년 출간작 <햇빛 기다리기>에 수록된 <겨울의 끝>을 확장한 장편이라고 합니다. “섬세한 망설임과 서글픈 다정함”(황인찬)으로 여전히 사랑을 이야기하고, 아직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빛의 기미를 느끼는 일곱 편의 소설이 이어지는 전작을 통해, 기다리는 사람에서 뚫는 사람으로 나아간 한 인물의 변모를 살펴봐도 좋겠습니다.

라인G2
이번 편지 어떻게 보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