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적인 시선의 힘은 사물이나 풍경에 내재되어 있는 생명을 일깨운다. 풍경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그것에 귀 기울이면 존재가 심화되는 것을 느낀다. 시선을 내부로 파고들수록, 사물들은 몸을 더 쉽게 열어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어느 순간 문득 느껴지는 미열이거나 서글픔 같은 것, 혹은 거품 같은 것은 아닌가. 천지를 나눈 사이에 빈 허공이 있고 그 쪼개어진 시원의 틈에 인간이 겨우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무수한 죽음이 삶을 키우는 것이리라.
아름다움은 인간의 세상을 능가한다. 그런 이미지가 살아 펄떡이는 시를 만나면 아직도 가슴이 뛴다. 새로운 이미지는 한 세계를 창조하는 것과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 오직 새로운 시적 이미지들만이 순간을 거머쥘 수 있게 해준다. 새로운 이미지와 새로운 언어를 향한 갈망은 계속 시인의 살과 잠과 영혼을 앗아갈 것이다.
우리에게 자연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자연에서 배우는 것은 ‘변화’일 것이다. 만물이 모두 실체가 없고 상주가 없고 공적하여 손에 잡히는 것이 없이 흘러간다는 것,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 이것을 늘 깨닫게 해준다. 변화를 자신의 존재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삶은 진정 자유로울 것이다.
25년 만에 첫 시집의 개정판을 펴내게 되었다.
내 시의 출발점인 이 시집을 출간한 후부터
지금까지, 돌이켜보니
시 말고는 나에게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다.
사물의 곡직이나 명암보다 색채와 무늬에
더 세심하게 귀기울이게 되었다.
나는 좀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소멸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생각한다.
소멸해가는 순간에도
생의 의미를 찾아 부단히 노력하는
그 모색의 과정이 내게는 시쓰기일 것이다.
어떻게 사라져갈 것인가. - 개정판 시인의 말
그 섬에서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을 모르고 지냈다. 대신 바람과 나무와 햇빛과 달빛과 바다와 등대와 먼 섬들과 고깃배와 물고기들과 안개와 비와 돌담과 벼랑과 가물거리는 불빛과 짙푸른 밤들과 함께했다. 밤에는 아마 열한 시쯤 전기가 나갔던 것 같다. 그리고 아침에야 꺼졌던 전기난로에 빨갛게 불이 들어왔다. 한밤중에는 쏟아져 내릴 듯한 별빛을 등불 삼아 더듬거리며 나와 한참을 떨며 마당에 우두커니 서 있다 들어가곤 했다. 언제나 바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