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을 최북으로 살았다. 그를 만나는 일, 그가 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매번 곤두박질쳤다.
최북은 조선 시대 3대 기인 화가 중 하나로 불릴 만큼 파격적인 일화가 많다. 천재적인 그림 솜씨에 호방한 기개를 지녔으나 중인 출신이라는 신분의 벽과 고집스러운 자존심 사이에서 방황하며 일생을 술과 기행으로 살다 갔다. 이에 대하여, 낭만적 반항이기는 했으되 인생을 너무 함부로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세상의 질서에 들어가기 위해 자존심과 열정을 죽였어야 한다거나, 세속의 명에 정도는 초월했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 아웃사이더를 불편해하는 기득권자의 시선이다. 세상의 질서가 자기 존재성을 허락하지 않는 것 같을 때 당사자가 겪을 깊은 고독과 좌절의 마음을 짐짓 외면하는 말인 것이다. 나는 최북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그의 외롭고 거친 싸움을, 그 위악적인 자기 파괴의 내면을들여다보고 싶었다.
'공산무인도'와 '풍설야귀인' 등 최북의 걸작들에는 도도한 야인성과 비애의 서정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이 그림들과 몇 개의 기행만으로, 생애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최북의 캐릭터를 만들어 내야만 했다. 그러자면 필요한 건 상상력이 아니라, 나 스스로 최북이 되어 그의 운명을 실감해야만 했다.